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 처음 가보는 길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매는 순간. 예전에는 일단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순서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꺼낸다. 내비게이션에서 보행자 지도까지 실시간으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편해졌다.
반면 이런 경험은 여전하다. 처음 가보는 백화점이나 대형복합몰에 들어서는 순간! 입구를 통하든, 주차장을 통하든, 기본적으로 나의 방향감각은 유명무실해진다. 오직 사이니지에 의존하여 목적지를 찾아 헤매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문제다. 도대체 내가 주차해둔 층이 몇층이었더라? 주차와 동시에 사진을 찍는 일은 당연한 습관이 되었다.
공간정보사업은 그래서 유망하다. 최근 많은 마케터들과 비즈니스 기획자들은 마켓쉐어가 아닌 타임쉐어의 관점에서 세상을 분석하고 있다. 같은 관점에서 그 시간점유율을 끌어올 수 있는, 실제 살아가는 동선상의 공간에 주목할 시점이다. 여전히 정보가 닿지 않는 영역과,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형태의 정보 제공이 어려운 상황들이 즐비하다. 그 가능성과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이미 경험한 모바일과 웨어러블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최근에는 복합현실(MR)이 계속 주목받는 이유다.
물리성의 제약을 탈피하다
그중 AR (혹은 MR)에 대한 시장확대가능성에 많은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반면 VR은 미래 커뮤니티 활동의 플랫폼으로 주목하는 것이다. 기대하는 시장의 형태와 가치가 확연히 달라지는 느낌이다.) 확실히 포켓몬고가 AR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그 전엔 매직리프의 고래 쇼케이스가 있었다. 알파고가 AI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과 비슷하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케이스이지만 기술의 일부이거나 단면적인 경험이긴 하다. 실제로 증강현실 기술의 화제성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라면 구글과 MS를 들 수 있다.
‘혼합현실(MR, Mixed Reality)’이라 화두를 꺼내든 MS는, VR의 이질감과 AR의 낮은 몰입도 문제를 해결하며 가상의 물체를 실제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인터렉션할 수 있도록 하는 홀로렌즈(Hololens)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헤드마운트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물리적인 주변 환경과 조합한 홀로그램 정보와 컨텐츠에 접근이 가능하다. 홀로렌즈의 미래는, 실제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가상의 체험 전시장이나, 사기 전에 자기 방에 미리 배치해볼 수 있는 가구, 수리기사가 방문하지 않고도 가전제품을 점검할 수 있는 서비스와 같은 미래를 제안할 수 있다. 기존의 공간에 새로운 정보가 더해지고, 분리된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거나, 아예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는 물리성의 탈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간이 정보 플랫폼이 되는 세상
얼마전 구글은 레노버를 통해 탱고(Tango)를 지원하는 최초의 스마트폰 ‘팹2 프로(Phab 2 Pro)’를 공개했다. 탱고 프로젝트는 구글이 오랜 기간 개발해 온 차세대 AR 기술이었는데, 최근 실제 상용서비스를 내면서 프로젝트라는 이름도 떼어냈다. 탱고는 조악하던 기존 AR의 완성도를 한단계 높였다. 실제 공간을 3차원으로 스캔해 현실과 가상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융합한다. MS의 홀로렌즈와 다른 점이라면, 탱고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을 위한 기술이란 점이다. 그 외에는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간을 새로운 정보 플랫폼으로 삼겠다는 비전이다.
지금까지의 공간 브랜딩이, 기존 공간의 정체성을 만들고 가치 부여를 하는 과정이었다면, 새로운 기술은 기존 공간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종용한다. 계산대 없는 미래형 마트를 제시한 Amazon Go가 보여주었듯이, 기술의 창조적 조합은 서비스의 방식마저 기존의 형태를 파괴한다. 새로운 공간이 창조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경험이 창조됨을 의미한다. 공간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사고의 틀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