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은 내일의 아름다움, 그 환상과 욕망을 판다. 화장대는 이미 가득 차 있지만 아름다움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약속된 것은 ‘내일’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하여 더 빨리 더 확실하게 아름다움을 실현하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끊임없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화장대가 가득 차는 이유, 그 심연의 동기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마케터의 화법 때문이다. ‘더 나은 제품’을 파는 마케터는 없다. 그들은 당신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그것은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낸다. 이미 많은 립스틱을 가진 당신에게 ‘더 나은’ 립스틱이 필요할까? 아닐 것이다. 그러나 립틴트는 필요하다. 립스틱처럼 겉에만 맴도는 게 아니라 입술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드는 컬러를 약속하니까. 립라커도 필요하다. 립스틱과 달리 당신 입술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각각의 이유로 당신에게는 립밤, 립글로스, 립퀴드, 립펜슬, 틴트라커, 젤스틱 등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카테고리 차별화 전략은 ‘매대 혹은 인식 상에 새로운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크지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신(가령 립스틱), 기존 시장을 세분화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거나(립틴트, 립라커), 기존 시장 밖에서 전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 이는 성숙시장에서 효과적인 전략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다는 것은 곧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욕구는 곧 초과 매출 그리고 시장의 성장을 의미한다.

화장품 마케터의 화법, 카테고리 차별화 네이밍

새로운 영역은 어떻게 만들까? 기본 원칙은 유사성과 차별성을 함께 말하는 것이다. 새로움은 비교 속에서 인지된다. 허공 속에 좌표를 찍는 게 아니라, 기존 카테고리 중 가장 유사한 곳에 좌표를 찍고 그 다음 차별성을 발신해야 하는 것이다. 유사성과 차별성이 함께 전달되어야 고객은 새로움을 ‘이해’할 수 있고 ‘욕망’하게 된다. ‘립스틱처럼 입술에 색조를 더하는 역할이지만 립스틱보다 발색이 자연스럽고 오래간다’고 말해야 고객은 ‘립틴트’를 이해하고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유사성을 강조하면 이해하기 쉽다

여성들에게 ‘에센스’는 ‘기본’에 속하되 ‘기능’을 지닌 화장품이다. 고로 매번 반드시 써야 하는 화장품이다. 따라서 ‘헤어 에센스’ 역시 반드시 써야 할 헤어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조미료에도 ‘에센스’가 있다. 샘표의 ‘연두’는 간장처럼 콩을 발효한 조미료다. 그러나 간장처럼 짠 맛으로 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감칠맛을 내어 식재료의 본 맛을 살려내는 역할을 한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샘표는 이 제품을 ‘요리 에센스’로 말한다. 대다수 고객인 여성은 이 의미를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에센스 = 피부관리의 기본!
헤어 에센스 = 헤어관리의 기본!
요리 에센스 = 요리의 기본!

차별성을 강조하면 욕망이 커진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제품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다. 새로운 프레임을 주어 기존과 다른 판단과 결론을 유도하는 것. 아무리 봐도 비누인데 계속 팩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홈쇼핑에서 대박을 친 ‘스웨덴 에그팩’이다. 비누라면 집에도 많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그런데 팩이라는 프레임로 보니 가격도 저렴하고, 세안이 곧 팩 관리이니 편리하기까지 하다. 슬리핑 마스크나 퍼스트세럼 등도 마찬가지. 그냥 크림, 그냥 스킨처럼 생겼지만 마스크, 세럼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새로운 판단과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면 결론이 달라진다. 비누라 하면 비싸지만 팩이라 규정하면 저렴하다.

이 전략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난무하는 카테고리 차별화 전략은 고객에게 혼란을 준다. 에센스와 세럼, 앰플은 무엇이 다른가? 스킨, 토너, 퍼스트 세럼, 워터(화장수), 스킨로션은 정말 다른가? 퍼스트 세럼은 스킨 전에 써야 하나, 아니면 후인가? 인터넷에 어느 남성이 화장품 사용순서를 묻자 이런 답이 올라온다. ‘올인원 화장품 쓰세요!’ 화장품 입문자에게 이 세계의 복잡함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기업에게 돌아간다. 카테고리 차별화 전략은 ‘카테고리’를 차별화한다. 반드시 ‘브랜드’가 차별화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적과 동침하면서 살아남는 법

카테고리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개성보다는, 새로운 카테고리 그 자체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게 된다. 또한 암묵적으로 경쟁사들과 협력하게 된다. 그게 시장을 키우는 법칙이니까. 하나의 브랜드가 홀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는 어렵다. BB크림을 한스킨이 독점했다면 붐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쿠션파운데이션 역시 아이오페만 존재했다면 K뷰티의 핵심이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쟁자와 함께 시장을 최대한 키우고, 경쟁자보다 더 이득을 챙기는 것이 이 전략의 기본이다.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필요한 모순된 상황. 카테고리를 차별화하고자 한다면 두 가지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카테고리를 키우는 전략 하나와 그 카테고리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또 하나의 전략 말이다. 카테고리가 커지면 누가 그 카테고리를 열었는지 희미해진다. 장충동에서 원조 족발집 찾기처럼. 반드시 오리지널이 그 시장의 리더로 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글로벌 시장으로 성장한 쿠션파운데이션, 아모레퍼시픽은 쿠션전쟁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따라서 카테고리의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면 시장의 생성기부터 성장기까지 ‘오리지널’, ‘리더십’ 두 가지 키워드를 반드시 쥐어잡고 가야한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변해도 카테고리의 오리지널임을 알아볼 수 있는 징표, 그리고 시장이 성장하는 내내 이슈를 주도하는 리더십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