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브랜드, 사람에 대한 총체적 이해

책을 읽는 내내 여러 면으로 건축과 브랜드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건축을 할 때 모든 것이 고려된다는 점입니다. 기온과 강수량, 주변의 건축재료는 건축의 기본조건을 만듭니다. 건축가는 건축물이 올라갈 터의 역사와 주변환경을 고려합니다.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 공간을 사용하게 될지 말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고려된 건축 그리고 도시는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은 테헤란로에서 산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동은 걷는 사람으로 넘칩니다. 사무실의 창가에는 부장님이 통로 쪽에는 말단 사원이 앉습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 맞게 행동합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굉장히 작지만, 그 어느 곳보다 동물을 다채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좁은 공간을 경험하면서 동물과 더욱 친밀해졌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브랜딩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역사와 지금 선 자리의 조건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다각도로 생각하고 우리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를 고민합니다. 모든 것이 고려된 브랜드는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브랜드가 제안하는 프레이밍을 통해 사람들의 판단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한 마디로 건축과 브랜드가 ‘사람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같습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공간의 힘

브랜드 매니저가 언어를 통한 프레이밍이나 경험설계를 통해 고객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건축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아주 미묘한 방식이라 우리는 느끼지도 못한 채 공간이 의도한 대로 느끼고 행동하게 됩니다.

테헤란로보다 명동에 걷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단위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출입구 숫자가 많아지면 보행자가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상점에 들어갈지 말지 수많은 선택을 내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입구가 많아지면 변화가 많아집니다. 쇼윈도의 풍경이 변화하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갈 때마다 다른 선택을 한다면 같은 거리에서 다른 체험을 하게 됩니다. 100미터 구간에 있는 입구의 수를 비교해 보면, 테헤란로는 8개에 불과하지만, 명동이나 가로수길은 무려 36개에 달합니다. 우리는 이 공간을 활보하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느끼게 됩니다.

코엑스 사람이 없는 이유도 공간의 영향 때문입니다. 지하쇼핑몰은 지상의 거리와 다르게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지상에서는 높은 건물이다, 해의 위치 등을 보며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만 지하에서는 어렵습니다. 거미줄처럼 짜인 코엑스몰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기 어려워 길을 잃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불안감에 주변을 즐길 여유가 사라집니다. 코엑스가 교통의 요지에 있으면서도 점점 한산해지는 이유입니다.

“공간을 크게 느끼게 하려면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해야 하고,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하려면 기억할 사건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기억할 사건이 많게 하려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들을 느낌과 감정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뜨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이벤트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쉽고 흥미롭습니다. 한국의 거리, 현대의 도시들, 뉴욕, 공원, 아파트, 도로, 사무실 등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공간을 아우릅니다. 펜트하우스는 왜 비싼지, 우리는 왜 인터넷을 ‘공간’이라 부르는지, 덕수궁 돌담길은 왜 데이트 장소로 좋은지 이 가볍지만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 저자 유현준은 쉽지만 깊이 있게 답해줍니다.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과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서 말입니다.

사람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요한 브랜드 매니저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 건축가의 한 권이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실하게 더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