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아닌 컨텐츠로 싸우는 시대
브랜드 위주로 뉴스를 소비하던 시대는 벌써 오래 전 끝났다.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제공하는 이른바 ‘뉴스패키지’라는 것이 해체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고 저녁 9시 뉴스로 하루는 마감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뉴스를 접한다. 내가 뉴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뉴스가 나를 찾아오게 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은 아침에 눈을 뜬 시각부터 잠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콘텐츠를 공급받는다. 스마트폰만 열면 개인이 방송국이 되는 세상이다. 자연스럽게 포털에서 보내던 많은 시간들은 SNS 플랫폼, 메시징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획일성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성이 기준인 것이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나의 선택과 경험이 중요한 시대, 지금까지의 오랜 습관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오늘날 새로운 마케팅의 핵심은 다소 B급스러워 지더라도 “훅 가고 빵 터지는” 지점을 찾아내 연결하는 것이 된다.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가수 이름을 걸고 명예롭게 싸우던 모습에서 이젠 얼굴을 꽁꽁 싸맨 복면을 쓰고 브랜드, 명성, 히스토리, 계급장 모두 떼고 오로지 ‘컨텐츠’로 싸워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처음 겪는 변화를 최대의 속도로, 연속적인 변화의 흐름으로 맞고 있다.
새로운 ‘텔링’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
새로운 스토리, 새로운 ‘텔링’의 시대이다. 이 시대의 브랜드들에겐 ‘스토리’가 중요할까? ‘텔링’이 중요한 걸까? 스토리가 무조건 중요하다. 세상이 천 번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나만의 메시지를 구축하는 것은 이러한 역동적인 미디어 시장에서 역설적인 중요성으로 부상한다. 그러나 개인 하나하나가 미디어인 ‘미디어 오디언스(Media Audience)’시대에는 메시지 그 자체보다 그 메시지를 어떻게 보여주고 어떤 미디어에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느냐가 더 큰 고민이 된다. 즉, ‘텔링’의 진화된 문법과 내러티브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나만의 ‘텔링’을 완성할 미디어를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5년이내 페이스북(Facebook)에서 텍스트가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들은 본격적인 영상의 시대에 개인미디어를 꿰찬 소비자들에 맞는 새로운 문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접근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홈쇼핑 산업에선 기본 공식이 깨지고 있다. 기존 30분~1시간 정도 소요되는 정해진 시간에 소비자를 TV앞에 앉혀야 하는 것이 홈쇼핑인데 CJ오쇼핑에서는 ‘1분 홈쇼핑’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1분간의 방송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며 1분이 지나면 진행상황과 관계없이 방송은 종영된다. 타깃은 당연히 정해진 시간에 TV앞을 지키지 못하고 SNS에서 종일 눈을 못 떼는 젊은 층이 타깃이고 2~3만원 대의 저가 상품 위주의 짧은 영상으로 이들을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진화하고 있다. 광고를 제작한 적 없는 브랜드 테슬라(Tesla)의 광고영상은 팬들에 의해 꽤 고퀄리티로 제작되어 유튜브와 각종 SNS를 넘나들며 테슬라(Tesla)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자체제작이 아닌 팬들이 만들어낸 이 영상은 웬만한 광고영상보다 퀄리티도 훌륭할 뿐 아니라 브랜드의 입이 아닌 팬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엄청한 의미를 제공하는 컨텐츠이다. TV프로그램에서 ‘뽀로로’를 성공시킨 아이코닉스(iconix)는 이제 테마파크를 통해 팬들의 경험으로 오프라인으로 확장, 연결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웹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시키려 한다. TV라는 미디어 속 컨텐츠 뽀로로는 오프라인의 경험으로, 온라인의 컨텐츠로 새로운 텔링을 하고 있다. 산업 도처에서 모바일이라는 환경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콘텐츠를 마음대로 골라 보는 시대의 전략을 보다 치열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첫 플랫폼이 모바일(mobile)인 10대와 20대를 품어라
얼마 전 열린 유튜브 팬페스트(Youtube FanFest) 2016에서는 씬님, 도티, JuNCurryAhn 등 인기 크리에이터들의 메인 쇼와 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팬미팅 행사가 동시에 이뤄졌다. 화면 밖으로 뛰쳐나온 크리에이터들에 10대 팬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은 크리에이터 한 명이 지나갔는데 순식간에 수백 명이 비명을 지르며 따라붙는다. 외모로 보나 순발력으로 보나 기성세대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들, 하지만 이들에게 웬만한 탑 아이돌보다 열광하는 수천명의 관중들의 모습에서 레거시 미디어 정서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웰메이드 컨텐츠를, 높은 개런티의 연예인을 써서, 전파로, 딱 한번 전송하는 공중파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이들의 가볍디 가벼운 영상들에 공감하고 환호하는 10대들을 이해하려는 것은 낯설기만 한 일이다.
이들을 좀 더 들여다 보자. 10대들이 보내는 시간들은 대략 이렇다. 유튜브에 들어가 엽기 짱구 스타일의 막무가내 개인 방송을 보며 논다. 혹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특정 커뮤니티에 올리고 전국에 형성된 덕후 독자들의 반응을 즐긴다. 좀 더 연령을 높여 20대로 가면 이들이야말로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최적화된 세대이다. 보고 만지고 먹은 모든 것을 고스란히 이미지로 남기는 세대의 하루를 남기는 최대의 기쁨은 자신이 올린 이미지에 반응하는 하트의 개수일 수 있다. 이러한 20대들의 경향을 전략적으로 겨냥한 브랜드가 바로 ‘부라더#소다’였다. 해쉬태그 부호(#)를 활용한 브랜드 네임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비주얼로 이들간의 공유가 쉽게 그리고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광고이미지, 제품이미지, 모델이미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이 전략은 정확하게 20대들의 마음과 손가락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10대, 20대의 타깃은 모바일 시대의 강력한 소비자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다양하고 특별한 콘텐츠의 열정적인 팬이고 창작자이자 훌륭한 마케터이다. 그리고 이들이 환호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이들에겐 친구이자 형제, 자매이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 모바일의 주요 고객인 10대와 20대를 품지 못한 브랜드, 미디어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천만 개성을 연결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라
미국 뉴욕 타임즈가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인 셰프드(Chef’d)와 손잡고 자사의 레시피 검색 서비스인 NYT 쿠킹(NYT Cooking)의 레시피 재료 키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발표했다. 신문이 아닌 식재료를 배달하게 된 배경에 바로 팬덤(Fandom)이 있다. 신문 사업만으로는 매출 감소를 막을 수 없었던 뉴욕 타임즈는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요리 코너 ‘NYT 쿠킹’을 통해 독자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동하는 시대에 TV를 플랫폼으로 하는 홈쇼핑 산업은 수년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모바일 앱을 통한 통합플랫폼을 구상하는 것은 물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TV를 기반으로 한 40대, 50대 기존 고객 이외에 젋은 층의 신규고객 유입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CJ오쇼핑은 새벽 2시 각 부서 막내 MD들이 기획한 ‘오덕후의 밤’을 내보냈고 7분 후 330만원짜리 피규어가 팔려나갔다. 젊은 그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냈다. 지갑을 고려하지 않고 심장이 흔들리면 구매한다는 오덕후를 끌어들인 것이다.
‘샤오미’의 시작은 작은 관심의 시장에서부터였다. 그들의 첫 테스트 제품을 내놓았을 때 사용자는 100여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샤오미의 제품, 서비스, 브랜드, 소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함께했고 ‘팬덤’의 다른 표현인 ‘참여감’을 만끽했다. 샤오미의 팬클럽 미펀은 브랜드의 팬이며 사용자, 브랜드 앰버새더이자 마케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점점 빨리 변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도 변화하고 학습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다양성의 시대, 개인의 취향, 의견이 그 자체로 미디어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미디어가 플랫폼이 될 수 없는 시대, 모든 것이 컨텐츠로 존재하는 시대에 브랜드는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소비자들을 원망하기 전에 ‘내가 내 브랜드의 팬이라면?’의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 혁신의 방향은 조금 다를 것이다. 소비자들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브랜드,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컨텐츠만이 살아남는다. 브랜드가 성장한다는 것은,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는 컨텐츠로서의 가치를 갖춘다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춰라.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라. 새로운 소비자들의 언어와 습관을 익혀라. 브랜드,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컨텐츠로 함께하라. 브랜드, 천만 개성을 연결하는 존재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