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72초, 모바일 컨텐츠로서 적당한 길이는 이 정도에서 합의된 듯 하다. 50분 분량의 TV 프로그램이 3~15분 길이로 편집되어 웹을 떠돌더니, 이제 1~3분 내외의 웹드라마가 인기다. 올 초 인스타그램은 동영상 컨텐츠의 길이를 15초에서 60초로 늘렸다. 모바일에서의 최대치는 60초다라는 판단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카카오는 1분(1boon), CJ오쇼핑은 1분 홈쇼핑을 제안한다. 반대로 광고는 길어졌다. 15초, 30초로 짧았던 광고가 1분이 넘는 영상으로 제작된다. 더 이상 TV라는 미디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다면 모바일에서 즐기기 좋은 ‘짧은 병맛 동영상’. 지금은 모두가 이 형식을 따라잡고 있지만, 모든 컨텐츠가 72초가 된다면 이제 무엇이 핵심인가를 고민해야 할 터. 그래서 살펴본 72초 드라마와 달러쉐이브클럽. 두 가지는 스토리텔링의 문법을 파괴했다는 점 그리고 파괴와 동시에 새로운 본질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같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친숙하게

컨텐츠 제작사 칠십이초는 지난달 아시아 유일의 웹 영화제 `K웹 페스트(Kweb Fest)`에서 72초 시즌3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72초 드라마, 72초 데스크, 바나나 액추얼리, 두여자, 오구실 등 다양한 초압축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통상 1~3분 정도의 동영상이 한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작년 런칭 초기에는 ‘도대체 본편은 언제 나오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드라마의 예고편 길이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결한다.

“칠십이초 콘텐츠의 본질은 형식이 아닌 `재미` 그 자체에 있다.”

성지환 칠십이초 대표의 말처럼 그들의 컨텐츠는 집요하게 재미있다. 그러나 소위 병맛으로 점철되지는 않는다. 재미는 디폴트, 때로는 감동스럽기까지 한 그들의 컨텐츠가 가진 공통점은 ‘일상’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가령 72초 드라마 시즌3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그녀가 나에게 팔베개를 해달라고 한다’. 애인에게 팔을 내어준 남자의 고통과 번뇌(?)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누구나 한번쯤 겪었지만, 누구와 나눌 만큼 큰 일도 아닌지라 그냥 지나쳤던 그 순간이 드라마가 될 줄이야. 소재가 사소할수록 공감은 쉽다. 뉴스 형식을 차용한 72초 데스크 ‘보이스 오브 코리아 뺨치는 큰 목소리 대회’를 보라. 대회는 한 카페에서 벌어진다. 점심을 마친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풀어내는 시간. 귀가 찢어질 듯 시끄러운 카페의 풍경이 ‘라우드 오브 코리아’로 재구성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니, 우리는 웃게 되고 또 한번 공감하게 된다.

사소하면 공감하기 쉽다

그래서 딱이다. 고객이 공감하는 브랜드를 빌딩하기에 72초는 너무나 탐나는 컨텐츠다. 실제로 72초는 삼성전자 레벨유, 삼성페이, TNGT, KFC, 옥수수, 영화 컨저링 2, 스톤하트 등과 함께 브랜드 컨텐츠(Branded Contents)를 제작했다. 72초가 확보한 뷰(시청자 수)도 콜래보레이션의 이유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친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만큼 낯선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그들의 컨텐츠력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72초의 컨텐츠는 브랜드에 우호적이지 않다.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옥수수’를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옥수수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는 설정을 통해 ‘옥수수’를 내리 반복하다가 마지막에서야 이 옥수수가 그 옥수수임을 보여줄 뿐이다. ‘레벨유’ 편에서는 제품의 정보가 전달된다. 그러나 PPL처럼 자연스러움을 전제하지 않고, 오히려 여행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PPL 제작에 참여하게 된 한 남자의 다소 애절한 사정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반응은 나쁘지 않다. 유튜브에서는 58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삼성광고 중 유일하게 끝까지 봤다’는 칭찬인 (듯 아닌) 듯한 댓글과 이런 광고를 내보낸 삼성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는 댓글들이 보인다.

브랜드도 자체적으로 브랜드 컨텐츠를 제작한다. 삼성도 더 많은 제작비를 들여 더 좋은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72초처럼 자연스럽게 웃음과 공감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컨텐츠력을 따라잡는다 해도 말이다. 원래 칭찬은 남이 해줘야 제 맛 아닌가? 기업이 직접 브랜드 컨텐츠를 제작할 때는 또 다른 어법이 필요하다. 달러쉐이브클럽을 보자.

가격도 커뮤니케이션도 F***ing Great

달러쉐이브클럽은 이름처럼 1달러에 면도날을 배송해준다. 여성의 생리대처럼 정기적으로 소모하지만 시장가격은 의외로 비싼 남성의 필수품이 바로 면도날. 질레트와 쉬크가 양분한 미국 면도기 시장, 달러쉐이브클럽은 2012년 불쑥 시장에 나타났고 2016년 7월 유니레버에 인수되었다. 인수가격은 한화로 1조 1천억원. 미국의 스타트업, 그것도 IT가 아닌 생활용품 판매서비스로, 겨우 1달러짜리 면도날로 1조의 가치를 만들어낸 비결은?

세 가지 혁신이 있었다. 첫 번째는 가격파괴, 두 번째는 온라인 정기배송이라는 판매형태다. (달러쉐이브클럽의 슬로건을 보라. “Shave Time. Shave Money.”) 그리고 마지막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유튜브에 띄운 한편의 홍보영상에서 시작되었다. 1분 33초 길이의 제작비용 500만원짜리 영상($4,500). 창업자 마이클 더빈의 개인 블로그 활동 외 커뮤니케이션이라고는 이 영상이 유일했다. 그러나 어떤 힘이었을까? 달러쉐이브클럽은 사이트 개설 48시간 만에 12,000건의 주문을 접수한다.

홍보영상의 주인공은 마이클 더빈이다. 멀쩡하게 생긴 이 CEO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이크입니다. 1달러면도클럽(달러쉐이브클럽)닷컴의 창립자죠. 달러쉐이브클럽이 뭐냐고요? 한 달에 1달러만 내시면 고품질 면도기를 보내드립니다. 네, 1달러요! 면도날은 괜찮은 편이냐고요? 아뇨. 존X 기가 막힙니다(Our blades are f**king great).” 이렇게 시작되는 영상은 뒤로 갈수록 가관이다. 이제 잘 생긴 개그맨쯤으로 보이는 이 CEO는 멈추지 않는다. “왜 20달러나 내고 브랜드네임 면도날을 쓰시죠? 그 중 19달러는 ‘로저 페더러’ (질레트 광고 모델인 테니스 선수)에게 가는데 말이에요. 저도 테니스 잘 칩니다.” 동시에 헛스윙. 마이클은 가격뿐 아니라 쓸데 없는 고퀄을 꼬집으며 영상을 이어나간다. 영상의 마지막은 가볍고 의미심장하게 툭, “이제 바꿀 때 아닌가요?(Isn’t it about time?)”
웃기는 광고는 많다. 그러나 달러쉐이브클럽 영상은 웃음 속에 뼈가 있다. 그냥 병맛이 아니라는 얘기다. 골리앗 질레트가 이름마저 거창한 ‘Proshield’ 제품을 광고하며 “The best a man can get”이라 말할 때 다윗은 이건 겨우 면도기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면도가 하고 싶을 뿐 온갖 기술의 결정체를 갖고 싶다거나(갖고 싶더라도 그게 면도기는 아니겠지) 우주 최고의 남자가 되기 위해 면도하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 어깨에 힘이나 좀 빼라고 말이다.

달러쉐이브클럽과 72초는 경쟁자와 시장의 화법, 우리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컨텐츠의 중심에 놓았다. 웃음은 덤이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고민했고 그 결과로 ‘짧은 길이’ ‘일상’ ‘재미’를 발견했다. 아니 선택이라고 해야겠다. 우리도 몸에 밴 화법을 털어내고 모종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컨텐츠에 무엇을 담을 건가? 미래의 거대한 꿈과 오늘의 소소한 하루 중에서. 누구에게 말할 건가? 다수대중과 한 명의 고객 중에서. 어떻게 말할 건가? 큰 소리로 심각하게 또는 속삭이듯 유머를 담아서. 고민 끝에 ‘짧은 길이, 일상, 재미’를 선택했듯, 더 많은 고민속에서 또 다른 화법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