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주 3잔이 치사량인 여자 알코올쓰레기다. 알쓰 또는 간쓰, 알찌, 술찌로 불린다. 작년 부라더소다부터 얼마 전 출시된 이슬톡톡까지, 알쓰를 위한 술들이 대세인 듯! 그래서 수고하는 마케터들에게 환영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몇 자 적어 본다.
알쓰란?
알쓰란 알코올쓰레기를 줄여 쓴 표현이다. 알코올쓰레기가 뭘까? 내가 알코올에게 쓰레기라는 건가 알코올이 나에게 쓰레기라는 건가? 좀 억울한 표현이다. 내가 알쓰인 게 부끄럽지는 않다. 다만 불편할 뿐. 그리고 가끔 주량이 센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술꾼과 나의 주량은 다르다. 꾼의 소주 한 병이 나의 한 잔이다. 두 잔이면 나도 이미 소주 두 병을 마신 셈인데, 그리고 실제로 두 명 마신 사람과 같은 신체적 변화가 오고 있는데 술자리는 끝나지 않는다. 분위기 깬다며 술을 강요하고, 마지 못해 마시면 남는 건 토하며 잠드는 뻔한 결말이다. 이게 바로 알쓰의 불편함이다.
안 마시면 되지?
알쓰가 술자리를 피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술자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술자리가 ‘좋아서’다. 술 못 마시는 알쓰에게 술자리가 편하려면? 술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반대로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 술자리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알쓰의 무기가 필요하다. 연예계의 유명한 알쓰인 소녀시대 태연도 ‘술을 못하지만 술파에 있고 싶다’는 말로 알쓰의 심경을 대변했다. 나에게는 소주, 맥주 같은 ‘세고 맛없는 술’말고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알쓰의 술 구분법
술꾼의 술 = 소주, 양주, 맥주
술꾼이 가볍게 마시는 술 = 알쓰가 맘먹고 마시는 술 = 과실주, KGB 크루저 등 5도 정도의 술
알쓰의 술 = 호로요이, 부라더소다, 이슬톡톡 등 3~4도 정도의 저도 탄산주
술꾼들은 탄산주를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지만, 알쓰들도 소주 맥주를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다. 내 입맛에 소주는 정말 맛이 없다. 마치 소독약을 들이키는 기분이다. 이런 알쓰에게 부라더소다나 호로요이는 술자리 흐름에 맞추어서 나도 같이 취해갈 수 있는 술, 혼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술이다.
저도 탄산주는 마실만해?
내가 탄산주로 처음 접한 술은 부라더소다. 친구네 냉장고에 있길래 소다음료인 줄 알고 병째로 벌컥벌컥 마셨다. 알코올 맛이 느껴져 물었더니, 술이란다. 충격. 이름이 ‘소다’인 탓도 있지만 투명하고 가벼운 페트병에 담겨 있어 당연히 음료인 줄 알았다. 어쨌든 부라더소다 덕에 ‘기분 좋게 취한 느낌’을 인생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그 전에는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고통이 찾아오곤 했었으니까. 나도 이제 ‘술 마시는 즐거움’을 안다!
알쓰의 허세
좀 유치하지만 부라더소다도 소주잔에 부어먹어야 제 맛이다. 꾼들의 속도에 맞춰 여러 번 원샷을 하다 보면 마치 술 잘 마시는 1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알쓰들의 SNS를 보라. 알쓰들도 술 마시며 인증샷을 올린다. 술꾼인 척 ‘#술허세’의 태그를 달아 올린다.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과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편히 즐긴다는 사실이다. ‘지금 소주 두 잔째인데… 한잔 더 먹으면 끝이야…” 따위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다.
술을 섞어 마시는 이유?
소맥은 왜 마시는가? 술꾼들은 목넘김을 좋게 하려고 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새로운 맛을 찾는 재미 때문에 섞는다. 그래서 그냥 소맥보다는 다양하게 조합한다. 소주, 맥주, 사이다를 섞는 암바사주,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소주에 녹여 마시는 메로나주, 복분자와 부라더소다를 섞어 마시는 솜사탕주 등. SNS에서 유행한 제조법은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시도해본다. 내가 섞어 마시는 이유는 좀 달랐다. 어차피 몇 잔 먹고 취하는 거(나에게는 딱 세 잔의 기회가 있다),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의 폭이 비교적 많아졌고, 섞어마시기 보다는 간편하게 탄산주를 시켜 먹는 편이다.
알쓰가 좋아하는 분위기
알쓰는 편한 공간을 원하다. 집에서 친구들과, 날씨 좋을 때 한강변이나 공원 잔디밭 등 노상에서 즐기는 것이 좋다. 술집도 좋지만 맘 먹고 마시러 가는 곳이라는 인상이 생겨버려서 부담스럽다. 또 안주가 비싸니 집에서 홈안주와 즐겨 먹는다.
알쓰에게 사랑 받는 술의 조건
1. 무엇보다 맛
알쓰는 알코올 도수를 감별해내는 초예민한 혀를 가졌다. 1도 차이도 크게 느낀다. 그러므로 술맛이 너무 세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레몬, 자몽 등 시트러스 계열이 많은 것 같은데, 콜라나 요거트 맛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2. 보는 순간 안심하게 만드는 디자인
부라더소다를 음료로 착각한 탓은 ‘소다’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명하고 가벼운 페트 용기 때문이다. 한 눈에 ‘나는 너가 마셔도 되는 술이야’라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하다. 일단 초록색 유리병은 탈락. 보는 순간 ‘센 술이다’라는 느낌에 자세히 볼 생각도 안 한다. 이름이 소다라도, 아무리 맛있어도 알쓰에겐 이미 ‘접근금지’ 신호가 접수되었다는 말씀. 호로요이나 이슬톡톡은 좋다. 분홍분홍 소녀한 그래픽에 글씨도 딱딱하지 않다. 읽을 때도 둥글둥글한 어감에 말장난이 섞여 있어 가벼운 술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패키지나 POP에 도수를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알쓰에게 중요한 정보는 도수이기 때문이다.
3. 진열은 술 코너에
어느 곳에 진열하느냐도 중요하다. 편의점에 탄산주를 사러갔다가 음료 코너로 가야 할지 주류 코너로 가야 할지 망설인 적이 있다. 러나 술은 술이기에 주류 코너로 갔다. 대부분 주류 코너에서 탄산주를 찾을 수 있는데, 몇 번인가 음료 코너에서 찾은 적도 있다. 어차피 탄산주는 패키지 형태나 색감으로 구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음료보다는 주류 코너에 모여있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 일반 술과 섞여 있어야 더 눈에 띈다.
마지막 팁. 부라더소다나 이슬톡톡을 마시는 남자는 없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그러나 남자 중에도 알쓰는 많다! 남자 알쓰는 KGB나 크루저 등 소녀한 느낌이 나지 않는 주류를 택한다. 그들도 좀 더 낮은 도수의 탄산주를 원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