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된 식품유통의 모습
신선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통업계의 치열한 배송경쟁의 화두도 ‘가격’과 ‘속도’에서 ‘신선’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더 싸게, 더 빨리 물건을 배송하는 것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더 많은 신선한 식품을 배송하느냐가 핵심이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칸타월드패널은 “전세계적으로 온라인 쇼핑품목이 식료품, 특히 신선식품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식료품이 강화된다는 것은 소비자와의 더 끈끈한 관계, 결국 더 많은 매출을 의미한다. 대형 온라인 유통사들이 너도나도 ‘온라인 슈퍼마켓’으로 변모를 시도하는 이유이다.
변화되는 소비환경 속에서 유난히 눈에띄는 두 회사가 있다. 오카도(Ocado)와 배민프레시. 두 회사 모두 아직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낯설 수도 있다. 오카도(ocado)는 얼마전 이마트 유통 체계를 혁신하면서, 정용진 부회장이 오카도를 벤치마킹했다고 해서 국내에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아마존의 인수설이 돌 정도로 저력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이다.
배민프레시는 덤앤더머스라는 벤처회사로 시작해 작년 우아한 형제들과 합병하여 ‘배달의 민족’ 서비스와 시너지를 내고 있는 기업이다(기업명은 우아한신선들). 영국의 대표적 온라인 슈퍼 오카도와 한국의 신선배달을 책임지는 배민프레시, 토양이 전혀 다른 두 브랜드의 서로 다른 듯 통하는 지점을 살펴보면서 유통의 진화를 확인해보자.
공통점 1. 푸드테크(Foodtech)에 집착한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우리가 트럭과 웹사이트만으로 온라인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며 바보같은 분석을 내놓는다. 유통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회사 설립 때부터 스스로를 테크놀로지 회사(technology company)라고 생각해 왔다.”
영국의 온라인 유통기업 오카도(ocado)의 기술담당 이사 폴 클라크는 오카도가 단순한 유통기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지난 2000년 4월 설립된 오카도는 오프라인 점포가 단 한 개도 없다. 그럼에도 오카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빠르고 정확한 배송’ 덕분이다. 약 95%의 상품이 주문 다음날 배송을 완료한다. 기존 대형마트의 복잡다단한 과정이 단순화된 것. 기존 마트의 온라인 주문과정은 이렇다. 일단 고객이 대형마트 온라인 사이트로 주문서를 올리면 배송지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로 주문이 들어간다. 마트 직원은 카트를 끌고 직접 돌아다니며 진열된 상품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이와 달리 오카도(ocado)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했다. 총 350여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기술 전문가(technical specialist)들이 배달 경로 최적화, 차량 추적, 산업 자동화, 로봇 공학 등을 연구해 오카도만의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이를 CFC(Central Fulfillment Center)라고 부른다. 이들의 기술은 보다 빠르고 정확한 배송이라는 그들의 목적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동시에 고객에게도 큰 안심과 믿음을 준다. 오카도의 물류시스템이 위성항법시스템에 접목되어 있기에 고객은 구글지도를 통해 주문한 상품의 배송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심지어 물류센터 안의 모든 상황도 시뮬레이션된다는 사실을 오카도는 늘 강조한다. 3D 게임기술을 사용해 이동하는 6,000여 개의 상자와 컨베이어, 장비들을 이미지화했다. 실시간으로 물류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또 일부 화면을 확대해볼 수도 있다. 상품을 물류센터에 쌓고 꺼내는 대부분의 과정을 로봇이 대신해 효율을 높인다. 기존 마트보다 4.6배나 높은 효율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온라인푸드는 단순히 푸드가 아닌 것이다. 신선도와 정확한 배송을 약속할 수 있는 기술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는 지난달 얼마전 한 세미나에서 ‘푸드테크(Foodtech)’라는 용어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말이라고 강조했다. O2O 영역에서 거대 경쟁사를 누르고 1등을 하기 어렵다고 여겨, 자신들이 1등을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들은 온라인 신선식품 기업 덤앤더머스를 인수하여 배민프레시를 설립했고 배달 음식점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개’ 역할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젠 직접 식재료를 확보해 음식을 만들고 자체 냉장차량과 오토바이를 통해 신선하게 배송하는 전(全) 과정을 담당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김 대표는 회사의 목표를 “음식과 IT(정보·기술)를 결합한 국내 1위의 푸드테크 기업”이라고 했다. 왜 음식 배송에 IT가 필요할까. 현재 배민프레시가 제공하는 반찬 가짓수만 2,000가지다. 수백, 수천명의 고객이 주문하는 각각의 반찬을 원하는 날짜와 주기에 맞춰, 각자의 집 앞에 정확히 배달하는 것은 IT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대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푸드테크 시장에서는 결국 음식과 고객을 연결해주는 물류 경쟁력을 누가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며 “배민프레시만의 신선 배송 시스템을 통해 바쁜 현대인들의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높이는 서비스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배민프레시의 자체 보유한 신선물류시스템은 전 차종 냉장/냉동기능 탑재 차량 보유로 제조된 상태 그대로 최상의 신선함을 고객 집 앞까지 배송한다는 장점이 있다. 유통기한이 짧은 내추럴 푸드 상품의 특성상 신선 물류 체계와의 결합이 중요하다. 배민프레시는 온라인 커머스에 B2C 신선물류를 결합시켜 오후 10시부터 새벽 7시까지 배송하는 신선배송 서비스를 만들었다. IT시스템을 통해 배송상황, 시간 등을 파악할 수 있고 전용송장을 통해 배민프레시만의 디자인 커스터마이징을 실현한다. 배민프레시 측은 신선 물류를 접목한 커머스를 통해 최소 42조원 이상의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공통점 2. 상품력으로 승부를 본다
유통기반이 없었던 오카도(Ocado)가 온라인 슈퍼마켓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창업초기에 맺은 웨이트로즈와의 전략적 제휴이다. 웨이트로즈(Waitrose)는 식료품에 대한 브랜드 명성은 높지만, 338개의 매장이 주로 영국 남부에 몰려있어 채널을 확보하지 못했던 상황. 두 회사의 니즈는 잘 맞아떨어졌고 그 시너지는 충분히 발휘되었다. 웨이트로즈 제품을 취급하면서 시작한 오카도는 온라인 식료품 판매업체 중 단연 돋보이는 양질의 식료품을 확보하게 된 것. 현재 오카도 내에서 웨이트로즈 PB 제품매출은 33%에 달한다. 온라인 비즈니스는 신뢰를 눈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비율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소비자들이 100%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오카도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했고 웨이트로즈라는 브랜드를 활용하여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웨이트로즈는 영국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 브랜드다. 1904년에 설립되어 영국 왕실로 식재료품을 납품하는 프리미엄 슈퍼마켓이다. 오카도는 웨이트로즈와의 제휴로 초기 인지도와 신뢰를 얻었으며, 소비자들은 웨이트로즈의 다양한 PB를 더 쉽게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창업년도인 2000년에 웨이트로즈와 협업했던 오카도는 2014년, 영국의 또 다른 대표적 유통브랜드 모리슨과도 업무협약을 맺어 상품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지금 오카도(Ocado) 앱에 들어가면 상품력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카피를 만날 수 있다. “45,000여 개의 제품이 당신 손끝에서! (Up to 45000+ products at your fingertips, from corn flake to cookware.)”
우아한형제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비전을 내세우며,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서비스 고도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더 나아가 신선식품 정기배송 서비스인 덤앤더머스를 인수해 ‘배민프레시’를 만들어 냈고, 여기에 반찬정기배송업체인 ‘더푸드’, 프리미엄 도시락 ‘옹가솜씨’, 베이커리 배송서비스 ‘헤이브레드(사업권)’를 인수하며 상품력을 강화했다. 배민프레시는 최근 해독주스 1위 브랜드 ‘츄링’을 인수하고 내추럴 푸드 분야에 대한 상품력도 확보했다. 이를 통해 반찬, 도시락, 베이커리, 주스, 과일, 고기 등 3,000여개 이상의 다양한 식품을 각 가정에 배송 중이다. 제조-물류-유통의 일원화를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줄이고 배민프레시만의 PB 상품을 통해 신선식품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같이 거래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결국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한 회사, 같은 비전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효과적인 운용의 모습을 넘어선 끈끈함으로 읽혀진다.
무엇보다 이들의 상품력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 제휴는 ‘현대백화점 식품관’ 과의 제휴이다. 핫하다는 맛집들을 모두 입점시켜 멀리 판교현대백화점까지 소비자들을 불러낼 수 있는 힘은 다름아닌 지하 식품관이었다. 이곳의 프랭크 무지개롤, 기야마 바움쿠헨, 핫텐도 크림빵, 비첸향 육포 등의 대표 아이템을 모바일로 원하는 날짜에 배달받을 수 있게 연결한 것이다. 핫하다는 맛집들을 고르고 골라 입점된 현대백화점 식품관이 통째로 들어와 빠른 배송이라는 혜택까지 결합되었으니 고객니즈를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거리가 멀어 가지 못함을 아쉬워했던 소비자들은 판교 현대백화점 식품관 디저트가 이렇게 편리하게 내게로 왔다는 흐뭇한 경험을 그냥 넘길 리가 없다. 배송중에 빵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완충제와 아이스팩까지 넣어 정성껏 포장해온 이들의 배송박스는 한 컷, 한 컷 감동의 후기가 되어 생생하게 SNS에 인증되고 있다.
공통점 3. 고객과 대화하는 브랜딩
두 기업의 브랜딩을 관찰해보면 온라인 기업의 브랜딩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볼 수 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에서처럼 손에 만져지는 경험이 생략된 비즈니스이다. 따라서 배송을 기다릴 때의 경험, 배송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고스란히 신뢰로 남기 때문이다. 오카도(Ocado)와 배민프레시는 이런 면에서 각각 영국적, 한국적 유머를 가진 기업이라고 하겠다. 그들은 브랜딩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오카도는 배송차량을 그들의 광고판이자, 대화창으로 사용한다. ‘오카도(Ocado)’라는 사명이 아보카도에서 왔듯이 그들을 상징하는 것은 결국 아주 시선한 과일 그 자체이다. 생생한 과일이미지가 배송차량 전체에 확대, 크롭되어 빨간 딸기, 주황 오렌지, 초록 호박, 노란 레몬, 보라색 포도로 랩핑된 차량이 도심을 누빈다. 이런 시각적 신선함은 충분히 공유할 만한 것이라 많은 소비자들은 이 배송차량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공유한다. 이미지 뿐만이 아니다. 이들의 배송차량에는 그들만의 메시지가 있다. 오카도만의 차별점(Ocado difference)를 시리즈로 만들어서 직접 말하듯 메시지를 기록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Our online supermarket delivers 99% of its groceries without substitutes. Does yours?”, “Waitross groceries delivered with devotion”, “We’re as green as walking to the supermarket”, “Quality groceries that won’t cost the earth” 등의 서비스 정체성 관련된 대화가 가장 점잖은 대화일 것이다. 말풍선과 함께 들어가 “Cheaper than you think”, 키스마크와 함께 적은 “Everybody loves ocado service”, 손바닥도장과 함께 “With our life guarantee”의 메시지들은 좀 더 친근하고 애교있는 메시지로 고객과 대화하고 있다.
배민프레시는 배달의 민족의 독특한 화법과 스타일을 공유하게 되는데 실은 배민프레시의 전신 덤앤더머스 역시 매우 독특한 화법을 지녔었다. 그들의 대화방법은 다양한 제품, 서비스에 적용한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배송차량은 이들에게도 중요한 대화보드가 된다. “차안에 아기가 타고있어요”를 패러디한 “삼계탕이 타고 있어요”류의 유머는 기본. ‘신선함이 문앞에’라는 슬로건은 간결하지만 허세없이 진솔한 그들의 면모를 드러낸다. 배송 스티커나 배송 테이프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배송박스를 감싼 테이프에는 “밥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깨알 명언을 잊지않았다. 상품 하나하나에 신선도에 관한 메시지를 부여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 역시 역대급이다. 행운의 트럭을 보면 7년간 행운이 온다며 인스타그램 공유를 유도하고, 무한도전과의 콜래보레이션으로 가족에게 의미있는 음식을 전달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전파하고 있다.
태풍의 눈을 벗어나
아직까지 그래도 식료품의 온라인화는 ‘태풍의 눈’ 안에 있었다. 이제 곧 몰아닥칠 치열한 경쟁의 태풍을 준비하며 두 브랜드가 보여준 이 3가지의 공통점들은 리테일러들에게도 소비자들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온라인 상품군 중에서도 신선식품은 가장 많은 투자와 관리가 필요한 품목이지만, 동시에 소비자들의 니즈가 가장 커지고 있는 품목이기에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식료품이 강화된다는 것이 소비자와의 더 끈끈한 관계, 더 잦은 재방문 및 높은 로열티, 결국 더 많은 매출의 기회로 돌아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그리고 고요하지만 불안했던 ‘폭풍의 눈’을 벗어나 거친 폭풍속에서 휘몰려 가기 전에 반드시 냉정하게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식료품의 온라인화’라는 큰 폭풍을 대비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기술력, 매력적인 상품력, 그리고 소비자와의 속깊은 대화로 준비하고 있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