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예능총회’ 편에서 패널이 언급한 무한도전 위기설이 인상적이었다. 무한도전의 위기설은 사실상 쭉 있어왔고, 이제는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는 이야기였다. 수긍이 되는 말이다. 같은 위기가 계속된다면 사실 그건 진짜 위기가 아니다. 올해도 불황일 것이라는 전망이 어김없이 신년벽두를 장식했다. 겨울이 춥고 여름은 더운 것 마냥 당연하게 불황을 운운하니, 이제는 불황의 일상화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지속되는 불황도 실은 더 이상 불황이 아니지 않을까? 삼시세끼를 함께하게 된 객식구는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과는 대하는 심정이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불황이 즐길만한 대상은 아니겠으나, 그에 적합한 대응태세는 이미 삶 속에 인스톨(설치)돼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일상적 불황이라는 환경은 마찬가지로 브랜드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왔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가 각 기업의 브랜딩에는 어떤 화두를 던지고 있을까?
30%의 브랜딩, 소유권의 이양
얼마 전 어느 책에서 오늘날의 브랜딩은 30%만이 기업에서 담당하고, 나머지 70%는 소비자들을 통해 이뤄진다는 구절을 읽었다. 그 수치가 어떻게 측정된 건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많은 마케터와 브랜드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할만한 주장일 것이다. ‘브랜드, 고객으로의 소유권 이전!’ 뭔가 심쿵하는 거창한 말이다. 고개를 끄떡이게 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불황이고, 다른 하나는 미디어의 변화이다.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디어의 변화는 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합리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게 하도록 종용하는 불황, 그리고 그 정보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소비자 개인이 하나의 미디어가 돼 자기화된 정보로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공유하도록 만드는 환경의 변화. 이 두 현상이 맞물리면서 오늘날 브랜딩은 마케터의 의도보다는 일반소비자들에 의해 더욱 또렷하게 형성되고 강하게 확산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브랜드 담당자는 부질없는 브랜딩 활동을 멈추거나 움츠려드려야 할 것인가? 그건 좀 안이한 생각이다. 30%가 작다는 생각은 그것이 단지 비율에 불과하다는 점을 놓치는 것이다.
브랜딩 활동이 제한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될 수 있는 힘이 과거에 ‘1’이었다면, 앞서 말한 소비자들에 의해 발생되는 70%의 영역으로 인해 그 힘이 2배 이상 새롭게 창출됐다고 볼 수도 있어야 한다. 결과의 절대값이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기업이 행하는 30%의 의미는 재해석된다. 나머지 70%에 더욱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의 브랜딩이 기업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 되는 것이다. 브랜드가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것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더라도, 결국 그 소유권의 시작은 공급자로부터 비롯된다. 세상의 어떤 브랜드도 최초의 생산자나 기획자가 없이 자연발생 되지는 않는다. 다만 처음의 의도에 어긋난 방향으로 파생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뿐이다. 앞서 말한 ‘70%의 희망’은 사실상 절망과도 맞닿아있다. 도무지 컨트롤이 쉽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 소비자에 의한 브랜딩에 효과적으로 관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통적인 브랜딩 전략에 충실하되 미디어를 잘 이해해야 하고, 그에 적합한 콘텐츠를 잘 생산해야 하고 등등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론들이야 많겠지만 그 중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시작은 공급자의 몫
우선, 아이덴티티는 단순명료하더라도 스토리와 경험은 반드시 풍성해야 한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단순할수록 좋다고 한다. 하지만 문서상의 단어로 끝날 위험성도 있다. 그 단어만으로는 대체로 아무런 감흥이나 이해를 주지 못한다. 실제로 그 단순함이 고객의 마음속에 새겨지고 확산되는 과정은 반드시 스토리와 경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그 스토리와 경험이라는 것이 천편일률적이거나 빈약하다면 사람들은 굳이 발견된 그 이야기를 전해서 나르지 않는다. 확산이 멈추고 소비자라는 미디어는 기능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전달하는 방식은 오롯이 매력적인 스토리와 자기화된 경험이지, 더 이상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브랜드만의 고유한 관점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능, 훌륭한 디자인, 만족할만한 가격일지라도 그것만으로 자신의 마음에 브랜드를 새기지는 않는다. 기능이나 디자인, 가격을 관통하는 관점이 제시되고 소비자들이 동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물론 관점이 고유할수록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을 타깃팅할 수 없게 되지만, 그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강한 호응과 동조를 받게 된다.
한 예로 공기청정기 시장에 샤오미의 미에어라는 제품과 발뮤다의 에어엔진이라는 제품이 있다. 두 제품은 외곽과 구조가 매우 비슷해 후발인 샤오미는 (언제나처럼) 카피캣의 오명을 받았다. 복잡한 특허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자. 기업윤리에 대한 부분도. 그건 실상 ‘사지 않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려는 사람은 즉 소비자는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선택을 한다. 샤오미와 발뮤다는 결과적으로 고유한 브랜드로서 양립된다.
샤오미는 이른바 샤오미제이션(Xiaomization), 즉 카피 논란마저도 배제하지 않으며 가격 혁신을 이뤄내는 브랜드로서 그 추종자를 확산시킨다. 발뮤다 역시 고유의 기업철학인 ‘최소에서 최대를’이라는 모토로부터 제품 경험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오리지널리티를 통해 브랜드의 충성도를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누군가는 샤오미의 관점을 소비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발뮤다의 관점을 소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선택한 그 브랜드의 경험을 기꺼이 타인들에게 확산시켜갈 것이다. 단지 제품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관점을 함께 소비했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경향이다.
여전히 중요한 인터널 브랜딩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인터널 브랜딩이다. 이는 브랜드는 공급자의 것으로부터 소유권이 시작된다는 말과 연관돼 있다. 이제는 제한된 채널에서만 브랜드가 경험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업이 공들여 마련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전달되는 인상만을 브랜드의 전부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 접점에서 브랜드의 결정적 순간이 찾아올 지 사전에 모두 예측하거나 한결 같은 관리를 이어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기업에 속한 모든 관계자들이 동시적으로 ‘이미 브랜딩 돼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인터널 브랜딩은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내부인을 위한 브랜딩 활동을 해야 이룰 수 있는 결과이다. 여전히 이것은 간과된다. 하지만 컨트롤하기 어려운 소비자의 브랜딩 활동에 비해 기업 내부고객에 대한 브랜딩은 오히려 컨트롤 가능한 범주이다. 외부의 불확실성에 대해 하소연하기 전에 바가지를 안에서 먼저 새게 해야 한다. 기업 내부의 사람들과 외부의 소비자들이 동일한 이미지, 동일한 소속감으로 함께 소유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모든 브랜딩의 궁극적 이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