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하면서 손에 꼽히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편의점 구경’이다. 다양한 상품에서 느껴지는 재미 뿐 아니라 점포마다의 개성과 서비스가 확실히 남다르다. 한 끼 해결은 물론 현금 인출, 택배 수령, 티켓구매, 고지서 납부 등 웬만한 일은 편의점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고객층이 급격히 변한 일본 편의점은 또 다른 진화를 겪고있다. 세븐일레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4년 편의점을 이용한 50대 이상 고객은 전체의 11%였지만, 2011년에는 31%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20대 젊은 층은 1994년 59%에서 2011년 33%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일본 편의점 업체들은 이 같은 시장 변화에 이색 아이디어를 쏟아놓으며 증가한 고령을 향해, 줄어드는 젊은 층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편의점’이라는 유통 카테고리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앞선 전략을 선보이는 일본의 사례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트렌드를 앞서간다.
고객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능하다
편의점에 ATM기기가 있는 모습은 이제 더이상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세븐일레븐은 ‘세븐뱅크’라는 ATM기기를 통해 웬만한 금융서비스를 편의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본 편의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기기는 바로 복사기이다.한국 편의점에도 대학가 주변으로 프린터와 복사기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키오스크 복합기’가 설치되어 있다. 일본 편의점에서 만나는 복사기는 단순한 복사기가 아니다. 복사, 스캔, 팩스는 물론 디지털 카메라나 문서 등을 출력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어 편리하다. 세븐일레븐에서 ‘세븐 티켓’이라 부르는 이 서비스는 콘서트, 스포츠, 영화, 각종 이벤트 등 다양한 티켓판매의 핵심적인 편의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아이돌그룹 콘서트 티켓은 물론 테마파크나 고속버스 티켓도 손쉽게 살 수 있다.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라
ⓐ 편의점 + 간호서비스
고령화에 따른 서비스가 결합되는 사례도 있다. 로손(Lawson)은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에 간병서비스 업체 ‘위즈넷’과 협업하여 ‘간호 로손’을 출점했다. 매장 안에는 약이나, 기저귀, 노인을 위한 전용식품 등 실버타깃에 특화된 상품이 구비되어 있다. 위즈넷에서 파견한 인력인 ‘케어매니저’는 실버 고객들의 말동무를 해주고, 약품 상담이나 건강검진 서비스도 제공한다.
일본 세븐일레븐에서는 2000년부터 도시락 배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회원이 66만명에 달한다. 그 중 60%는 60대 이상의 장년층. 거동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홀로 사는 노인의 안부도 확인하는 노인돌보미 역할까지도 해내고 있다.
ⓑ 편의점 + 면세점
일본 편의점 특별함의 정점은 면세점이다. 세븐일레븐은 2014년 12월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전국 30곳에서 면세 점포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해, 지난달 면세 매장을 1000곳으로 늘렸고 2016년 연말까지 3000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매장에서 5000엔 이상의 물품을 구매한 외국인 고객이라면 누구나 8% 소비세 면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표적인 면세 편의점인 도쿄 아사쿠사 세븐일레븐 매장의 경우 중국 관광객들이 ‘싹쓸이 쇼핑’하는 까닭에 자주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로손과 패밀리마트 등 다른 업체들도 일부 매장을 면세 점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편의점 + 주점바
미니스톱에서는 ‘시스카’ 매장을 운영한다. 퇴근길 가벼운 한 잔이 아쉬운, 그러나 이자카야는 부담스러운 여성고객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생맥주와 전자레인지에 데운 간단한 안주 등을 서비스한다.. 시스카는 ‘도시(city)의 작은(small) 카페(cafe)’란 뜻이다. 낮에는 커피와 야채 스무디, 발아 현미 주먹밥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건강식 메뉴를 판매하고, 저녁에는 프리미엄 생맥주와 안주 메뉴를 판다. 생맥주 1잔에 400엔으로, 일반 술집보다 저렴한 가격인데다 떡볶이 등 여성들이 특히 선호하는 안주를 제공해서 금세 입소문을 탔다.
ⓓ 편의점 + 특화타깃
‘로손100’은 1인 가구를 위한 ‘100엔 숍’이다. 소포장한 야채·과일 등을 판다. 슈퍼에서 살 수 있는 상당수의 식자재를 갖추고 있고, 주택 인근에 자리하며 가격까지 저렴하다. ‘내추럴 로손’은 건강 식품에 전문화된 편의점이다. 현미를 사용한 백반류나 영양균형이 뛰어난 가공 식품, 저농약 야채 등을 판매한다. 이 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상품은 일반 로손 점포에 선보여 경쟁력을 강화한다.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공간의 시너지
패밀리마트는 노래방 업체와 제휴해 편의점 안에 노래방을 만들었다. 노래방에서 음료, 음식을 즐기고자 하지만 종류가 적고 가격도 높다. 때문에 아예 편의점과 노래방이 협업하여 ‘노래방 편의점’을 탄생시켰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나 안주거리를 노래방으로 들고가서 바로 즐길 수 있다는 편의성이 있다. 이 시스템은 고객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오후 시간대의 이용 확대 효과를 기대하는 전략인 것이다. 노래방 뿐 아니라 패밀리마트는 ‘약국+편의점’ 일체형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편의점은 남성과 젊은이들의 이용이 많고, 약국은 여성과 고령자가 자주 찾는다는 점에 착안해 다양한 고객층을 한꺼번에 끌어들이기 위해 개발한 점포다. 2018년까지 약국과 합친 일체형 점포 1000곳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패밀리마트 중에 일본 ‘마이도 오오키니 식당’과 협업한 공간이 있다. 이 곳에서는 24시간 생선구이 정식부터 팬케이크까지 간단한 식사를 집밥처럼 즐길 수 있다. 도쿄 진보쵸에는 ‘패미탁구’점이라 불리는 패밀리 마트와 탁구장이 일체화된 점포가 있다. 연중무휴, 24시간 탁구를 즐길 수 있어 학생, 직장인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간편식 그리고 탁구, 이 둘은 ‘편의점’이라는 특성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줄 수 있는 이들 산업의 특성이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사례이다.
새롭게 정의되는 ‘편의(便宜)’의 의미
한국 편의점의 60%가 점주 인건비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한다. 붕어빵처럼 똑 같은 상품과 서비스로는 악화되는 수익률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포맷에 연연하지 말고 입지 및 타깃을 기준으로 일신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편의점은 일본의 어떤 점을 참고해야 더욱 발전할 수 있을까?
첫째, ‘고객입장’에서 ‘편의’를 기획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경제흐름을 겪고 있다. 일본의 인구흐름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유통업계도 단지 매장의 수만 늘리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을 창출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지금, 편의점을 정말 필요로 하는 소비자는 누구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진정한 ‘편의’란 무엇일까? 늘어나는 고령고객에게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유효할 것인지, 감소하는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편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둘째, 선 자리에서 생각해야 한다.
같은 국가라도 지역마다 특징이 다른 것처럼 각 지역의 특색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의 특징, 지역민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여 현지에 맞춤화된 편의점이 되어야 한다. 인구분포 성별분포와 관광객 분포 등을 고려한 지역특화는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골목골목을 파고들 수 있는 특성을 가진 ‘편의점’이라는 카테고리는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셋째, 고객을 위해 유연하게 협업한다.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한 곳에서 다양한 니즈를 해결하길 바란다. 그들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분야와 자유롭게, 유연하게 협업을 시도해보라. 일본 편의점이 5만3천여개, 한국 편의점이 3만여 개를 넘어서는 편의점 전성시대이다. 뛰어난 접근성을 활용해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 다양한 아이디어와 함께해 보자. 협업의 시너지를 통해 수익은 높아지고, 고객의 편의는 극대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