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상품!’ 정답입니다. 롯데 프리미엄아울렛은 ‘프라다’를 입점시켜 선발주자인 신세계사이먼을 위협했죠. 신세계푸드마켓은 ‘피코크’라는 강력한 무기를 키워가고 있고요.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이털리, 매그놀리아, 조앤더주스 같은 글로벌 핫 브랜드를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광역상권 백화점’으로 자리잡는 데 한몫 했습니다. 전통적인 유통 모델(old-economy retail cocktail)도 답일 겁니다. Low prices, Large selection, Convenience 즉, ‘원하는 것을 싸고 편리하게’라는 원칙 말입니다. 글로벌 유통공룡 아마존도 이 모델에 충실하죠.
“I can’t imagine that ten years from now [customers] are going to say: ‘I really love Amazon, but I wish their prices were a little higher’”
아마존의 CEO, Jeff Bezos의 말입니다.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그러나 오프라인 유통에서만큼은 ‘문화’를 꼽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싸고 편리하게 제공하는 것은 온라인을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상품도 마찬가지죠. PB를 제외하면 상품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국내외, 온오프를 막론하고 다양한 채널에서 동일한 상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이 절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은 ‘살아있는 느낌’입니다. 시장에 가면 느끼는 그것, 생동감과 활력, 사는 맛 말입니다. 온라인 쇼핑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쇼핑’이라고 했던 한 교수님이 떠오르는군요. 살아있는 느낌은 첫째 ‘물질’에서 옵니다. 사과를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 즉 물질을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두 번째는 ‘사람’입니다. 아마존이 나의 구매이력을 분석해 새로운 제품을 추천해주는 것도 기쁩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단골손님’이라 부르며 반가워하고, 덤을 챙겨주는 것만큼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공유하게 된 화법이나 행동양식, 즉 ‘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특히 오프라인 유통에서 말입니다.
매뉴얼 없는 브랜딩, 실시간 생성되는 브랜드스토리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모방이 불가능한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매뉴얼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브랜드 요소가 아닙니다. 매뉴얼북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에 얽힌 에피소드, 감동실화는 실시간으로 생성됩니다. 쿠팡맨이 만들어내는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사연들, 자포스를 유명하게 만든 에피소드. 이런 것을 어떻게 모방하겠습니까? 사람도 그들이 만들어낸 사연들도 모방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성질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강력합니다.
Scene 1. 쿠팡맨
연봉 4천만원의 정규직 쿠팡맨. ‘쿠팡맨’과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라. 블로그와 카페에 무수한 사연들이 쏟아진다.
Scene 2. 자포스 고객센터
‘자포스는 1999년에 설립된 온라인쇼핑 기업으로, 신발을 전문적으로 판매해 성공했다. 현재는 아마존에 인수됐고 신발, 의류, 가방 중심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자포스의 유명한 고객 감동 사례는 다음과 같다. 자포스의 한 고객은 어머니를 위해 신발을 구매했다. 하지만 신발이 배송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고객은 자포스에 연락해 해당 신발은 선물로 구입한 거였는데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돼 결국 선물을 전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환불이 가능할지 문의했다. 자포스는 곧바로 환불하고 제품을 회수하겠다고 답했다. 자포스는 그 다음날 해당 고객에게 조문용 꽃과 위로의 말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제품 구매를 하지도 않은 고객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 이 사례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고객 감동을 위해 노력하는 문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자포스는 ‘행복을 배달하는 기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웨그먼스, 직원이 왕이다
해외 슈퍼마켓 중 ‘문화’로 차별화된 두 개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웨그먼스입니다. 웨그먼스(Wegmans Food Markets)는 2015년 기업평판 조사에서 아마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기업입니다.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총 88개 점포를 운영하는 슈퍼마켓 체인에 불과하지만, 1998년부터 포춘지가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웨그먼스의 철학은 한마디로 ‘직원 우선’. 직원의 만족을 통해 고객만족을 달성한다는 생각입니다
‘By taking care of each other, we take care of the customer’ 그들은 스스로를 ‘가족(Family)’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대우합니다. 가족이기에 해고하지 않고, 따라서 이직률도 낮은 편입니다. 직원 각자가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연봉도 업계 최고 수준이며, 교육 프로그램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웨그먼스는 1984년 장학 프로그램을 시작해 지금까지 3만 2천여명의 직원에게 1억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현재도 약 5천 5백명 정도가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전체 직원수는 4만 5천명, 그러니까 9명 중 1명은 교육비를 지원받고 있는 셈입니다(일반적 교육비가 아니라 대학장학금만을 뜻하며, 파트타임 직원도 장학 대상임).
직원 우대를 통해 웨그먼스가 목표하는 것은 ‘전문성’입니다. 치즈 담당자에게는 낙농업 견학을, 와인 담당자에게는 보르도 현지방문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과 자신감이 쌓이면 서비스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상품의 위치나 가격 정도를 안내해주는 직원과 같을까요?
웨그먼스의 철학과 물리적 지원으로 직원들은 전문성, 자부심 그리고 친절로 이어지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이런 문화는 실시간으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죠. 칠면조를 구입했지만 집에 있는 오븐보다 커서 요리하지 못하는 고객을 위해 매장에서 직접 요리를 해주었다는 이야기,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고객이 전화로 케익을 주문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전화주문은 정책상 금지되어있지만 통화했던 직원이 임의 판단하여 접수함. 이 부분이 중요하다!), 어깨 수술로 팔이 불편한 고객을 위해 쇼핑을 내내 함께해 준 직원의 이야기 등등. 어쩌다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고객들은 실제로 느끼게 됩니다(물론 최고의 슈퍼마켓, 일하기 좋은 직장 1위 등의 객관적 지표도 있다). 웨그먼스의 문화를, 그 여유로움을 말입니다. 웨그먼스가 있는 버팔로 지역의 추운 겨울, 사람들은 “웨그먼스에 기분 전환하러 가자”라고 말한답니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도 있네요. 미국 코미디언 알렉 볼드윈이 어머니에게 이사가자고 하자 어머니의 반응은? “웨그먼스를 떠나라고?!”
트레이더 조, 활기차게 친근하게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홀푸즈마켓과 같은 미국의 유기농 푸드마켓입니다. 유기농이지만 경쟁사 대비 비교적 저렴한 가격, 마니아층을 겨냥한 독특한 상품구성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만의 분위기로 차별화됩니다. 창업자인 Joe Coulombe는 트레이더 조는 ‘식료품점과 주류 판매점을 합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품이 아니라 분위기를 표현한 겁니다. 주류점의 흥청망청 혹은 들뜬 분위기를 말하는 거겠죠? 매장은 하와이안 컨셉입니다. 레드와 허니브라운 색깔로 화사합니다. 매장 내 핸드페인팅 사인이 유난히 많습니다. 인터콤 대신 종을 사용하고요. 들뜬 축제의 분위기 속에 편안함과 친근함을 보여줍니다. 직원들도 ‘Captain’, ‘Mate’라 부릅니다. 고객들이 상품에 압도되거나 혹은 직원들을 어려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웨그먼스의 문화가 츠타야서점의 ‘컨시어지’와 같은 전문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트레이더 조는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로 규정됩니다.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 공기감 같은 거죠. 사우스웨스트의 고객경험처럼 구매자-판매자의 기능적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와 경험을 전달합니다.
문화로 차별화하기 1. CEO의 명확한 신념, 공표된 언어
문화로 유통공간을 차별화하고자 한다면, 먼저 직원과 조직에 대한 관점과 신념이 명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쉽고 명쾌한 언어로 그 신념을 공표해야 합니다. 웨그먼스에게 직원은 ‘가족(Family)’입니다. 그들은 ‘Who We Are’라는 핵심가치로 그들의 신념을 공유합니다.
문화로 차별화하기 2. 실질적 혜택과 권한
문화는 강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여 문화를 만들고 지속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실질적 혜택과 권한을 준비해야 합니다. 웨그먼스는 연봉, 교육프로그램 등으로 혜택을 제공합니다. 24시간 운영되는 자포스 고객센터는 매뉴얼 없이 운영됩니다. 직원들은 시간 제약 없이 고객과 통화할 수 있고, 꽃다발 등 작은 선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앞서 제시한 자포스의 감동사례도 그런 권한이 있기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쿠팡맨이라는 차별성을 자기화하려면 ‘연봉 4천의 정규직’이라는 혜택이 있어야 합니다. 영업이익을 따지게 된다면, 문화로 차별화하려는 전략은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문화로 차별화하기 3. 신화를 완성하는 의례
‘기업문화 오디세이’의 저자 신상원씨는 “기업문화란 기업의 무의식, 숨겨진 질서”라고 말합니다. 신화는 창업스토리 같은 기업의 숨겨진 기원을 말하는데, 이런 신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의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를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가령 약국을 운영했던 창업자 존 키엘이 만든 신화는 매장 직원들의 유니폼인 ‘약사 가운’이라는 의례로 재현됩니다. CEO의 공표된 신념, 직원에게 제공된 혜택과 권한, 그리고 ‘의례’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코드가 있어야 문화가 생성되고 유지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 의례 또는 코드는 몇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습니다. 신상원씨가 말한 유니폼 등 (1) 사람의 ‘외양’이 있을 겁니다. 이게 공간으로 확장되면 (2) 인테리어 및 룩앤필이 됩니다. 트레이더조의 하와이안 컬러, 핸드라이팅이 떠오르시죠? 세 번째는 (3) 호칭, 언어입니다. 트레이더 조는 직원을 ‘Mate’ ‘Captain’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디즈니랜드은 ‘캐스트멤버’입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배역’을 준 것이죠. 손님들(게스트)을 즐겁게 해준다는 미션을 가지고 각각 매표원, 환경미화원, 놀이기구 진행요원을 ‘연기’하는 겁니다. 네 번째는 (4) ‘의식’입니다. 직원들간의 미팅, 휴식의 방식을 규정하는 겁니다. 대기업에서 많이들 하시죠. 위계질서를 완화하기 위한 CEO와의 대화나 캔미팅(캔맥주를 마시며 하는 자유로운 회의) 같은 것들 말입니다. 좀 어색한 느낌이 있을 겁니다. 혜택이나 권한이 직급에 따라 위계화되어 있는데, 맥주 한 캔으로 자유로운 수평적 분위기가 생기긴 힘들죠.
이제 기업에는 내외부가 없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예전에는 Internal branding – External branding이라고 구분했지만 지금은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애매합니다. 내외부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커뮤니케이션 하는 채널도 점점 일원화될 겁니다. 코카콜라 저니는 고객을 위한 컨텐츠와 직원들을 위한 컨텐츠가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문화로 차별화하고자 한다면 실제로 기업의 실체가 변해야 합니다. 내부 입단속으로 외부 이미지를 관리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문화를 형성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지면,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굉장히 강력한 차별점, 말 그대로 궁극의 차별점이 되는 것, 바로 ‘문화’입니다.
J& Brand는 지금 Retail Store에 주목합니다. 슈퍼마켓, 푸드마켓, 편의점 등 가장 고전적인 유통 포맷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통’ ‘공간’은 브랜딩의 총체입니다. 이 곳에서 고객의 브랜드 경험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J& Brand는 복잡다단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봄으로써, 오늘날의 리테일 브랜딩, 그 큰 그림을 완성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