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탄탄한 팩트

지난해 브랜딩 트렌드를 전망하면서 필자는 팍팍한 현실과는 대비되는 판타지(fantasy)가 주된 흐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현실에서의 고단함이 다른 방향의 위안을 찾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2016년 브랜딩 트렌드를 전망하는 시점에선 상실의 시대를 넘어선 ‘사실(fact)’의 시대라는 걸 확인한다. 검증할 수 없는 판타지보다는 만져질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한 팩트만이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유일한 근거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불안과 불신이 지배하며 각자도생하고 있는 이 시대를 돌아보면 더욱 그러하다. MBC 예능프로 ‘복면가왕’에 119대원 복면을 쓴 현진영의 등장에 왜 우리는 모두 놀라고 공감하고 열광하는가? 소위 힙합의 전설이라는 꼬리표와 계급장을 뗀 그의 목소리로 체감되는 ‘팩트’, 이것 하나만으로 그간의 세월과 고민과 자존심을 넘어선 용기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팩트를 내세운다는 것은 이처럼 대단한 용기를 전제로 한다.

노골적인 사실로 무장

이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새삼 ‘노브랜드(No brand) PB’의 위력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들은 거품을 걷어내고, 브랜드를 빼고, 실속을 모아 소비자를 스마트한 컨슈머로 만들어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단순한 네임, 메시지, 디자인으로 군더더기 없는 사실만을 똘똘 뭉쳐 불쑥 다가온다. 이미 채널파워를 등에 지고 유리한 진입을 하는 입장의 PB지만 유독 강렬한 효과를 누리는 요인은 바로 ‘옐로우 컬러(Yellow Color, 노란색)’의 힘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진열 매대 곳곳에서 발견되는 단순한 옐로우의 강렬함을 피해가기 어렵다. PB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단순함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불쑥불쑥 등장하며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팩트를 엮는 유머

팩트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여전히 중요하다. 팩트를 나열해 브랜딩하는 것만큼 촌스러운 것도 없다. 팩트가 팩트여서 더욱 빛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아차 K5디젤은 ‘Surprising Diesel’이라는 메시지 하에 ‘응답하라 1988’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두 남자의 연애상황 일부로 들어가 K5의 ‘연비’와 ‘정숙성’이 만들어낸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게다가 디젤이라는 다소 소구하기 어려운 카테고리를 구어적으로 살려 ‘이런 디~젤, 놀랍도록 오래가고 놀랍도록 조용한 이런 디~젤’로 마무리해 각인시키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가장 중요한 속성 팩트 2가지, 그리고 디젤이라는 카테고리 팩트만으로 구성해 가장 단순하고 몰입이 잘되는 방향을 선택한다. 멋지게 보이려 꾸미지도 않고 그냥 ‘놀랍도록 연비 좋고 놀랍도록 조용한 디젤자동차’라는 팩트만을 밀고 나간 배짱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