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아마존에 맞서 미국의 가전유통점 베스트바이는 ‘BestBuy-only Barcode’를 도입합니다. 2012년의 일입니다. 방문 고객들이 스마트폰으로 바코드를 스캔, 가격비교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구경은 베스트바이에서 실컷 하고 구매는 아마존에서 하니 속이 쓰렸겠죠. 베스트바이를 ‘아마존 쇼룸’이라고 놀려댔으니 오죽 했겠습니까. 그러나 시대흐름에 맞서는 정책으로 떨어진 매출이 회복될 리는 만무합니다.

베스트바이는 현명했습니다. 곧 ‘토털 리테일(Total Retail)’ 전략으로 선회합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많이 팔면 된다’는 전략입니다. 베스트바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의 상품가격을 통일하고 고객 구매기록도 통합합니다. 온라인 구매고객이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직접 확인한 후 픽업해 가는 창구를 엽니다. 고객들에게 가격비교 마음껏 하라고 매장 곳곳에 디지털 스크린과 아이패드를 설치합니다. 그러면서 최저가격 보상제를 내걸었죠.

부동산 임대료나 매장 직원 임금을 다 내면서 어떻게 아마존과 가격경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실적이 저조한 매장은 과감하게 폐쇄하고, 매장 내 공간 일부를 삼성이나 MS같은 기업에 임대합니다. 그러면서 온라인 매출을 끌어올리죠. 고객편의 서비스를 확대한 덕택인지,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도 증가했다고 합니다. 2017년 5월 베스트바이 주가는 21.5% 폭등한 61.24달러를 기록합니다. 10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라 하네요.

한국에서도 온라인에 맞선 오프라인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이마트와 소셜커머스의 가격전쟁. 작년 2월부터 약 한달 동안 이마트는 기저귀, 분유, 여성위생용품, 커피믹스 등을 최저가에 판매합니다. 쿠팡보다 싸게, 위메프보다 싸게, 티몬보다 싸게. 이마트는 온라인 유통의 최대 강점인 ‘가격’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오프라인 유통이 온라인을 어떻게 가격으로 이기겠습니까? 이 뜬금없는 가격전쟁은 한달 만에 흐지부지 막을 내립니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데, 둘 다 손해 본 느낌은 확실한, 이상한 전쟁이었습니다.

정리해보면, 진격의 온라인에 맞선 오프라인의 초기 대응은 이러했습니다. ‘싸우자 아마존아!’ ‘싸우자 온라인아!’라고 외친 베스트바이나 ‘나도 싸다!’고 외친 이마트나 돌아보면 참 황당합니다. 온라인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공격했으니까요.

오프라인이 헛발질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의 득세로, 우리는 온라인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오프라인만의 매력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아이러니죠. 한마디로 하자면 그건 ‘사람의 성질’입니다. 오프라인에는 온라인의 캐릭터로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느낌’을 줍니다. 온라인에서는 상품이 이미지와 숫자로 존재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는 냄새와 촉감과 시야를 압도하는 물건들 그리고 내 몸을 움직여 일어나는 사건, 즉 체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연’이 있습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온라인의 세계는 ‘정확성’의 세계입니다. 당신의 성별이나 나이, 그리고 직접 입력한 취향을 바탕으로 상품을 추천해줍니다. 정확하지만 예측 가능한 세계만을 보여줍니다. 오프라인은 다릅니다. 가령 여행 책을 사러 서점에 간다면, 여행코너로 가기 위해 인문, 취미, 경영, 자기계발 같은 코너를 지나며 우연히 다른 책을 살 확률이 생깁니다. 여행코너에 가서는 마음 먹었던 ‘도쿄’가 아니라 ‘포틀랜드’에 관한 책을 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우연의 끝에 실제 여행지가 바뀔 수도 있겠죠. 이건 예측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이게 오프라인의 강점이죠. 인공지능은 ‘우연히, 실수로, 어쩌다, 그냥…’ 따위를 만들 수 없으니까요.

이런 오프라인의 매력을 조금 빨리 알아챈 곳이 츠타야나 일렉트로마트 같은 곳이 아닌가 합니다. 츠타야서점(혹은 가전)에 가면 1:1 대면 서비스 ‘컨시어지’가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우연한 발견과 그것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요리책 옆에는 요리 재료가 있고, 애플 노트북 옆에는 그와 어울리는 가죽가방이나 필기구가 멋지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렉트로마트도 재미있습니다. 드론이나 RC카를 조작해보거나 여러 가지 스피커를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가전 보러 갔는데, 뜬금없이 맥주도 마시게 되고 선글라스도 구경해봅니다.

오프라인에는 사람, 살아있는 느낌, 그리고 우연 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죠. (물론 기술의 진화는 대체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