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6년간의 브랜딩 화두는 단연 ‘경험(Experience)’이었다. 소비자의 경험동선을 그려보고 실제 경험하게 될 핵심 접점에서의 인상과 특별함을 창출하는 것에 모든 브랜딩의 실행이 집중되었다. 브랜드 경험을 혁신한다는 것은 모든 브랜드의 미션이 되었고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오프라인은 오프라인 나름대로의 경험을 숨가쁘게 실현시키고 있었다. 필자는 너도 나도 중요하다고 하는 이 ‘경험(experience)’에 대해 최근 옴니채널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새삼스럽게 더 생각하게 되었다. 온라인, 오프라인 경험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고객이 느끼는 진짜 경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옴니(Omni) 시대의 브랜드 경험

이제 많은 오프라인 브랜드들은 2,30대들의 쇼핑이 매장구매보다 모바일을 통한 구매의 빈도가 더 높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오픈서베이 모바일 쇼핑트렌드 리포트, 2017) 온라인 브랜드들은 이미 온라인 시장이 포화되었다는 현실과 진정한 신뢰와 로열티는 오프라인에서 쌓인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지금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보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는 쇼루밍, 온라인에서 정보검색을 하고 실제 구매는 오프라인에서 하는 역쇼루밍의 양방향 옴니쇼핑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에 오프라인 권력을 가진 브랜드들이 초기에 얼마나 미숙하게 대응했는지 우리는 모두 목격했다. 2012년 미국 최대의 가전 양판 브랜드 베스트바이(BestBuy)는 매장내에서 고객이 온라인으로 가격비교를 못하도록 검색을 막아버렸다. 2015년 일본의 미스코시 백화점은 젊은 타깃을 배제하며 실버층을 공략하며 오프라인 특화공세로 맞섰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온라인다운 오프라인 공간, 아마존북스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양쪽 진영의 고민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시점에 아마존북스(Amazon Books)의 사례는 나름대로 명쾌한 답을 주었다. 2017년 11월 시애틀에 1호점을 낸 이후 현재 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마존 북스의 목적은 아마존닷컴 온라인 경험을 연장시켜 이를 그대로 오프라인에 구현하겠다는 것(Physical extension of Amazon.com)이었다. 아마존닷컴이 매장에서 제공하는 경험이 일반 서점과는 다른 점은 일단 책의 진열방식에 있었다. 이들은 책을 꽂지 않고 책의 표지가 드러나도록 책을 놓았다. 아마존닷컴에서 책을 보는 경험을 그대로 연장시킨 것이다. 아마존북스에서 취급하는 책들은 일반서점의 책들과는 달랐다. ‘아마존 닷컴의 자체 평점 4점 이상의 책들’, ‘고객리뷰 1만 건 이상의 책들’, ‘킨들 사용자라면 3일 내에 읽을 수 있는 책들’ 등의 독특한 자체 분류기준을 적용하고 아마존 차트를 1주에 한번 업데이트해 이를 큐레이션에 반영한다.

고객은 아마존북스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마우스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철저히 온라인화된 오프라인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험은 의미가 있다. 이는 그 자체로 고객에겐 오프라인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차별적 경험이 되어 흥미를 자극하게 된다. 또한 아마존닷컴의 개성이 그대로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경험되면서 ‘아마존(Amazon)’이라는 브랜드 자체의 연상과 확신이 더욱 강화되는 효과가 생긴다. 이 점은 사뭇 중요한데, 많은 경우 브랜드 경험을 강화한답시고 브랜드 성격과는 전혀 다른 서비스, 휴식,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것을 여전히 경험강화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전을 판매하는 공간에 네일케어를 하는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전개한다든지, 맥락없는 예술작품을 전시한다든지, 공간자체가 좁은데 밑도끝도 없이 휴식공간을 넓게 잡는다든지, 이런 경험들은 과연 고객입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공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인지, 경험 자체의 혁신성이 있는지의 검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본 가치에 소흘한 채 고수한 소비자경험의 리스크

‘하늘에서 누리는 최상의 서비스’를 상징하던 미드웨스트 익스프레스 항공(MidWest Express Airlines)은 이코노미석 고객들도 일등석에 탄 듯한 느낌을 주도록 정성어린 서비스를 하는 항공사로 유명했다. 브랜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이 항공사가 남긴 고객 감동사례는 너무나 많다. 도자기 그릇에 담아온 맛있는 기내식과 훌륭한 와인, 기내에서 직접 굽는 초코쿠키는 특히 일품이었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인 요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드웨스트의 승무원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서비스로 감동까지 안겨주었다. 반려견의 무사한 탑승을 걱정했던 승격을 위해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반려견이 든 상자를 꺼내서 확인시켜 준 이야기, 기저귀가 떨어져 당황한 엄마에게 직원이 대신 기저귀를 구해다 준 이야기, 가방을 분실한 고객에게 같은 사이즈의 자기 옷을 빌려준 승무원의 이야기, 등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는 순간에 흔쾌히 마음을 쓰고 자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준 승무원들의 미담은 한 둘이 아니었다. 미드웨스트 항공의 경영악화로 인한 파산발표(2009) 이후에도 많은 고객들, 전문가들의 아쉬움을 호소하는 사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토록 훌륭한 실행을 일사분란하게 보여주었던 브랜드,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 브랜드가 파산하다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최상의 서비스 경험으로 고객만족을 높인 미드웨스트는 왜 오래오래 고객과 행복할 수 없었나? ‘미드웨스트’라는 브랜드 명성을 가능하게 해 준 이 ‘경험’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브랜드를 영원히 사라지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여객수요가 급감하고 재무적 상태가 좋지 않았던 911테러 이후에 항공편을 줄이고 대규모 감원이 되었지만 미드웨스트는 서비스 경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지만 역시 최고의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파산한 미드웨스트 항공은 결국 프론티어 항공과 합병되는데 이 과정에 ‘미드웨스트’라는 브랜드는 완전히 사라진다. ‘고객만족도가 높아지면 수익성이 개선된다’는 이론은 당연한 명제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드웨스트 항공은 높은 고객만족을 달성했고 실제 고객으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평가도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기업의 결정적인 순간에 기본적인 가치, 즉 수익창출과 고용이 유지되지 않은 고객경험이라는 것은 결국 큰 리스크 앞에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경험, 브랜드가 오롯이 느껴지도록 하는

고객경험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생존과 맞바꿀 만한 것은 아니다. 고객 경험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미드웨스트 항공은 기본 가치를 소흘히 한 결과 ‘미드웨스트’라는 브랜드를 영원히 잃게 되었다. 성과를 별개로 보면, 아마존북스와 미드웨스트 두 브랜드는 모두 그 브랜드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고 실행했다. 고객의 경험을 혁신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나온다. 설계한 경험에서 브랜드의 정신이, 그 브랜드만의 개성이, 그 브랜드만 줄 수 있는 스마트함이, 그 브랜드 자체가 오롯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진짜 브랜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