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아니라는 느낌
모두가 디지털을, 모바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아날로그의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저자는 디지털이 우리 생활 곳곳에 만연하여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을 입에 오르내리게 된 2016년에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캐나다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데이비스 색스(David Sax)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 의 부제는 ‘Real Things and Why They Matter’, 즉 ‘진짜 사물과 그들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는 디지털과 대치되는 아날로그를 ‘Real things’로 규정하면서 실체화된 ‘진짜의 것’이 이 디지털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주목받을 것이라고 감히 예견한다.
그가 말하는 아날로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물은 레코드판이다. 레코드판이 보여주는 경험은 고스란히 아날로그를 대변한다. 번거롭고 음향적으로도 더 뛰어나지 않은 레코드판을 듣는 행위는 디지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레코드판이 꽂힌 책장에서 앨범디자인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경험은 시작된다. 그리곤 턴테이블의 바늘을 조심스레 내려놓는 행동, 플라스틱 레코드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소리를 기다리는 몇 초간의 침묵, 때론 레코드 표면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불어내는 행위까지. 우리가 가진 신체적, 물리적 감각을 더 많이 사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아날로그이다. 디지털 파일을 간단히 켜는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참여감, 그리고 만족감이 남는 행동들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그 이유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경험말이다.
그는 존재를 과시하는 아날로그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조명한다.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오프라인(매장) , 일(로봇이 아닌 인간 노동자), 학교(스마트 기기가 아닌 인간 교사), 실리콘밸리(디지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조 기업의 아날로그적 기업 문화) 등 아홉 가지 분야 키워드를 중심으로 ‘브레이크 없이 디지털로 향해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기세로 살아나는’ 아날로그적 요소로 거침없이 일갈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음에 유행할 앱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 삶에 중요해 보이는 새로운 비즈니스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벽과 창문이 있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을 파는 비즈니스 말이다.”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브드 색스 David Sax) 中
낮에는 코딩, 밤에는 수제맥주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면 좋을까? 필자는 이 책을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서 뜬금없이 선물받았다. 마침 ‘옴니(Omni)’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있던 터라 이 책이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이 책은 특정 연령 혹은 특정 분야의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책이라기 보다는 그냥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디지털로 업무하고 소통하는 우리에게 ‘기술의 진화’라는 관점의 트렌드가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진짜 체험으로 남는 트렌드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단순히 디지털의 시대에 역행하여 아날로그로 회귀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로운 공존’을 얘기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실리콘밸리; 낮에는 코딩, 밤에는 수제 맥주’라는 타이틀이 말해주고 있다. 효율을 찾아야 하는 시간과 감각을 동원해 몸소 체험의 과정을 즐기는 시간이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서’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아날로그 영역에 있다고 단언하는 이 책은 유사이래 최고속도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방향키이자 마음속 깊은 불안감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