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바뀐 슬로건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대한민국이 ‘Creative Korea’와 ‘I Seoul U’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동안 조용했던 도쿄는 최근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한다. “Tokyo Tokyo Old meets New.” 첫 번째 “Tokyo도쿄”는 붓글씨체로, 두 번째 “Tokyo”는 고딕체로 표현한 이 슬로건은 표현 자체의 명확함이 있을 뿐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언어로, 시각으로 일체화시킨다. 이 슬로건은 다분히 올림픽을 앞두고 관광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업적 의도보다는 ‘도쿄’라는 도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도시, 최신 유행과 고즈넉한 사원이 공존하는 도시, 도쿄 말이다. 현재의 일본에서 미래의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거의 일본을 잊지 않는 것에 있다. ‘리부팅된 과거’라는 것은 그 어떤 첨단보다, 그 어떤 트렌드보다 강력하다. 이번에 방문한 도쿄에서 찾은 두 개의 사례 역시 도쿄의 새 슬로건처럼 오묘하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만나면 그렇듯이.

2013년 도쿄역의 리뉴얼과 동시에 일본에서 가장 큰 우체국이었던 도쿄중앙우체국 건물이 리모델링되었다. 리모델링 취지에 맞게 기존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특성을 가미해 재건축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도쿄중앙우체국의 리모델링된 공간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이슈를 생성시켰던 것은 건물 1츨~6층을 구성하는 키테(KITTE)라는 쇼핑몰이다. 키테(KITTE)라는 이름도 ‘우표’와 ‘오세요’라는 2가지 의미를 지닌 일본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키테(KITTE)는 단순히 상업적 의도의 공간만은 아니다. 이 장소를 관통하는 컨셉은 ‘Feel Japan’이다. 어느 유통점에 가도 비슷한 경험이 남는 것은 입점한 브랜드들 때문일 것이다. 고만고만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판박이처럼 공간을 채우게 되면서 쇼핑센터, 백화점, 복합몰 등은 동질화되고 식상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한 통의 편지에 우표를 부쳐 보내면 받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을 Feel Japan이라는 컨셉에서도 살리고자 했다고 밝힌다. 키테의 인테리어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구마 켄고가 맡았으며 층마다 다른 컨셉, 다른 자재를 사용했다. 지하 1층은 ‘와시(和紙)’를 주로 활용했는데 이는 한지와도 유사란 패턴의 자재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특산물이기도 하다.

키테의 ‘Feel Japan’ 컨셉은 이렇게 구현된다. 일본의 미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센스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켰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의 지역 특산물은 물론 그 지역을 대표하는 특징적인 노점포 등 98개의 레스토랑과 브랜드 매장이 들어왔다. 도쿄 어디를 가도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유통점의 물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만드는 지점이다. 세심하게 큐레이션한 글로벌 셀렉트숍도 눈길을 끈다. 전체 98개 매장 중 절반에 해당하는 비중이 도쿄에 처음으로 진출한 브랜드로 채웠다는 점은 이 곳에서는 도쿄에서 흔히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특별함을 주겠다는 의도가 고스란히 읽힌다.

1층은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모인 곳이다. 오키나와 가정식 요리점이 있는가 하면 히로시마의 급속 동결, 건조된 식자재를 만날 수도 있다. 1934년에 문을 연 디저트 전문점 니혼바시 센비키야 본점을 맛볼 수 있는 곳. 두드러지는 층은 3층인데 남녀 모두 관심을 가질 법한 패션잡화 및 라이프스타일숍 12개로 구성되어있다. 이 층에선 도쿄 중안 우체국의 국장실을 그대로 보존시킨 역장실을 경험할 수도 있다. ‘Angers bureau’라는 교토의 잡화전문점은 책을 소재로한 스테이셔너리 전문 숍이다. 편지와 관련된 용품, 오피스에서 쓸 수 있는 잡화, 서적, 문구류들이 감각적으로 큐레이션되어있다. 6층 키테가든(KITTE garden)에서는 맞은 편 도쿄 약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 가든이 무료로 개방되어있다. 도쿄를 자유롭게 느끼고 간직하라는 의도일 것이다. 키테 1층에서 도쿄역을 그리는 화가들이 정겹게 한 줄로 앉아있는 열정적인 모습도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또다른 Feel Japan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