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 모바일이 빨아들이는 우리의 경험세계는 날이 갈수록 위협적이어서 오프라인의 지위를 호시탐탐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오프라인 리테일들은 과연 절망적인 걸까? 그렇지 않다. 오프라인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고 체험하는 그야말로 리얼 월드(Real world)이다. 고객의 동선, 고객의 구매패턴 등 사용자 경험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곳, 어떤 품목과 연출에서 실제로 고객의 지갑이 열리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오프라인이다. 지난 5월에 방문한 도쿄의 크고 작은 리테일들은 아마도 이 시대에 오프라인 리테일이 살아남는 비밀을 알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오프라인이라 가능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의연하고 위대하게 말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쇼핑은 결국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 의도하지 않은 발견). 그냥 정확히 원하는 물건을 사려 한다면, 즉 트랜색션(transaction)이 목표라면 인터넷에서 사면 된다. 우리가 오프라인에 가고, 무엇을 파는 지도 모를 상점에 들르는 이유는 바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 때문이다. 욕구가 없었던 구매를 만드는 세렌디피티는 어떤 환경의 오프라인에서 가능한 것일까? 필자를 5월 황금연휴에 굳이 도쿄로 끌어들이는 거대한 자력이었던 ‘긴자6(GINZA6)’의 따끈따끈한 사례를 살펴보자.

복합몰의 50%가 플래그십 매장인 긴자식스

손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온라인을 제쳐두고 오프라인을 향해 번거로운 걸음을 하는 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그 곳은 나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여행온 것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그 어떤 매장에도 없을 다양함으로, 더 없는 휴식을 주는 편안함으로, 아니면 그냥 거기에 내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소위 ‘있어 보이는 기분’,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오픈한 긴자6는 모리빌딩, 스미토모상사 등의 컨소시움이 마츠자카야 백화점 자리에 재개발한 긴자 최대의 복합쇼핑시설이다. 긴자6는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의 협업으로 태어난 곳이다. 뉴욕 맨하탄의 현대미술과(MOMA)를 설계한 타니구치 요시오가 건축 설계를 맡았고, 일본의 대표 디자이너 하라 겐야가 로고 디자인을 제작했다. 그리고 중앙홀에 설치된 쿠사마 야오이의 작품 붉은 땡땡이 무늬 호박은 긴자6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글로벌 명품을 지향하는 이 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명품브랜드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다. 총 241개의 명품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데 이 곳의 매장은 그 어느 다른 곳의 브랜드 매장과는 사뭇 다르다. 전체 입점한 브랜드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21개의 브랜드 매장이 플래그십 매장이기 때문이다. 이 곳의 디올은 다른 곳의 디올과 공간의 분위기도, 취급하는 제품도, 디스플레이도 모두 다르다. 지하부터 지상4층까지 남다른 스케일로 브랜드의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줄 플래그십의 경험은 디올 뿐 아니라 발렌티노, 생로랑, 셀린 등의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라이프스타일 매장이기에 더욱 세렌디피티

6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이미 달라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츠타야 서점이다. 5층까지와는 사뭇 달라진 조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압도한다. 이 곳의 100만원이 넘는 대형 사진집은 지문이 묻지 않도록 면장갑이 준비되어 있다. 있을 법한 전문샵, 편집샵이란 샵은 다 입점한 듯이 강도높은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전개되는 곳. 타월을 테마로 한 타월씽크랩(Towel Think Lab)엔 종류별, 용도별, 컬러별, 등급별 타월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곳의 체험을 하나의 매장에서 보여준다. 데님편집샵 덴함(Denham)에선 모든 종류, 모든 브랜드의 데님을 만날 수 있다. 데님을 보러 왔는데 이 곳에선 블루 컬러의 사케도 맛볼 수 있다. 편집샵에서 까페를 겸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데님이라는 상품을 테마로 한 블루 사케라니. 데님은 사지 않더라도 블루 사케는 한 병 사갈 분위기이다. 지하의 식품매장엔 각 지역의 유명한 리테일들이 입점해 있지만 통로 한 구석의 와인 바에선 500엔에 글라스 와인을 즐기는 묘미가 있는 곳이다.

긴자식스는 모든 품목을 취급하는 백화점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오프라인의 체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품군(명품, 럭셔리, 컨템포러리, 화장품, 라이프스타일, 고급 레스토랑)으로 집중하고 그 경험이 더 새로워질 수 있냐에 방점을 찍는다. 큐레이션력이 중요한 이유는 세렌디피티의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새로운 것이 있어, 기분좋은 것이 있어라는 확신을 주는 게 오프라인 리테일의 성공포인트다. 복합몰의 절반을 플래그십 매장으로 구성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은 그 브랜드의 100%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들이 가진 상품은 기본, 이들의 철학을, 지향하는 컨셉을, 핵심타깃을 향한 오마주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곳이다. 단지 물건을 사러온 곳이 아니라 충분히 가치있는 분위기를 선물처럼 제공받으며 이 공간의 경험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스며들고 동화되는 것, 핵심은 이것이다.

쇼핑몰에 갔는데 쿠사마 야요이를, 타니구치 요시오를 만나게 하라.
브랜드 매장에 갔는데 플래그십의 경험을 제공하라.
데님을 사러 갔는데 블루 사케를 맛보게 하라.
타월 한장 살까했는데 타월뮤지엄에서 타월의 모든 것을 만지고 느끼게 하라.
단지 쇼핑이 아니라 문화로 휴식이 될 츠타야의 가장 고급스러운 버전을 맛보게 하라.
식품매장에서 복잡한 식료품 쇼핑을 하다가 와인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게 하라.
손가락 쇼핑이 아닌 몸은 움직여 나온 오프라인 고객에게 Serendipity를 제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