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즈음인가요, ‘브랜드의 몰락’이 노랫말처럼 한창 반복되었죠. 이보다 앞서 신세계가 ‘노브랜드No Brand’를 런칭했기 때문에 더욱 부르기 좋은 레토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브랜드는 몰락하지 않죠. 다양한 물성과 감성을 하나로 담은 상징체, 브랜드가 어떻게 사라지겠어요. 다만 품질 이미지, 지위를 상징하는 기능이 약해질 뿐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잠깐 검색해도 사용후기가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기능이 좋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제품을 선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브랜드에서 ‘품질 이미지’의 기능이 줄어든 만큼,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품질’이라는 ‘리얼리티’입니다. 이 리얼리티에 집중한 두 개의 브랜드를 발견했는데, 하나는 일본의 팩트리에(Factelier), 다른 하나는 한국의 로우로우(RAWROW)입니다.

두 창업자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인데요, 재밌게도 나이마저 같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SNS의 발달로 브랜드의 상징적 기능이 급격히 줄어드는 걸 겪은 세대여서일까요? 82년생의 두 창업자는 리얼리티의 세계로 파고듭니다. 중간 유통을 줄여 가격거품을 빼고, 미사여구와 환상을 걷어냅니다. 제품의 본질적 기능을 중시하고, 제품을 만든 제조기술과 제조업자를 존중하며 제조 그 자체를 숭고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각 일본, 서울이라는 지역의 이야기를 합니다. 글로벌 브랜드의 이미지를 동경하기보다, 자신과 커뮤니티의 실체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메이드인 재팬을 외치다, 팩트리에

팩트리에는 패션상품을 제작 및 판매하는 패션브랜드입니다. 라이프스타일 액센트 사의 CEO 야마다 도시오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든 브랜드로 2012년 런칭했습니다. 브랜드의 오리진에는 야마다 도시오라는 한 청년의 경험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1982년생, 그러니까 밀레니얼 세대인 그는 규슈 구마모토에서 오랫동안 여성복 매장을 운영했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납니다. 그가 어렸을 적에는 그 주변에 고품질의 일본산 의류를 파는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파리에서 유학하던 중 구찌 매장에서 일했던 야마다는, 그 시기 친구들이 ‘일본에는 진정한 브랜드가 없다’고 한 말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제조에 대한 존중이 있고, 제조사가 곧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급기술을 갖고 있지만 글로벌 브랜드의 OEM 업체일 뿐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한국과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실제로 일본 제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1990년 50%에서 오늘날 3%대로 줄어들었습니다. 야마다는 파리에서 제조사가 곧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일본 제조업자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팩트리에가 탄생합니다. 팩트리에는 30개 공장을 엮어 제품을 제조합니다. 이 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생산하는 곳도 있습니다. 중간유통을 생략했기 때문에 소비자는 3분의 1가격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살 수 있습니다. 제조업자 역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제품을 생산합니다.


제품은 ‘팩트리에’의 라벨을 달고 나오지만 브랜드의 근원적 힘은 제조업자에게 있기에, 이들은 함께 제품을 만든 공장의 이야기를 함께 전합니다. 구마모토현의 셔츠공장 ‘히토요시(Hitoyoshi)’의 사장 나카무라 키요노리는 “진짜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입은 느낌의 차이를 안다”고 말합니다. 셔츠 장인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공장의 지위를 높여 후계자를 양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하기도 합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주는 화려한 후광은 없습니다만, 그 빈 자리를 자부심을 가지고 꿈에 다가가려는 셔츠 장인의 스토리가 채웁니다.

프롬 서울, 로우로우

생활잡화 브랜드 ‘로우로우’는 2011년 시작되었습니다. 로우로우는 제조업체를 존중합니다. 그들이 만든 티타늄 소재 안경테에는 로우로우 로고와 함께 ‘DAEHAN’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안경을 만든 업체 ‘대한하이텍’의 이름을 브랜드와 나란히 박은 겁니다. 이 안경에 대한 소개문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것은 로우로우가 만든 안경이 아닙니다. 32년 동안 티타늄에 미친 분이 만들었습니다’. 이 안경테의 본질적 가치는 안경테 장인에게 있다는 점을 또박또박 이야기합니다. 로우로우의 이의현 대표 역시 1982년생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미국 패션업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파슨스스쿨(뉴욕의 유명 디자인학교) 주변에서 단추나 지퍼, 원단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한국 분들이 많이 운영한다. 세계적 브랜드들이 그분들과 함께 시작했는데, 브랜드만 슈퍼스타가 되고 그분들은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게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 혼자 잘나서 성공한 게 아니지 않나. 제조업체들과 공을 나누고 그들을 빛나게 하는 게 브랜드와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존경 마케팅’으로 완판 행진 브랜드 로우로우. 한겨레 2016-07-07

로우로우의 이름은, 날것의 행렬 즉 본질의 반복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본질은 장인에게도 있지만 물건 그 자체에도 있습니다. 신발이든 가방이든 물건 자체의 본질적 쓸모를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우로우의 운동화 알슈는 가볍고, 땀 배출이 잘 되고, 발뒤꿈치 부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운동화를 만들 때 그들이 생각한 것은 스탠딩 피플,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발사, 매장점원, 뮤지션 등을 위해서 그들이 하루 종일 착용할 다른 표현으로 들고 다닐 운동화가 무거우면 곤란하겠죠.


로우로우는 지난 4월 명동에 ‘프롬 서울(From Seoul)’ 매장을 열었습니다.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팝업스토어입니다. 이 곳은 로우로우의 제품뿐 아니라 서울과 관련된 디자인, 음식, 문화 등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한국식 팝콘을 만드는 ‘파퍼스 케틀콘’, 제과제빵 장인 ‘김영모빵집’, 강원도 횡성의 병맥주 ‘강서맥주’ 등, ‘서울’을 주제로 다양한 브랜드가 모여있습니다.
이의현이라는 이 젊은 청년이 왜 제조업, 장인의 이야기에 집착하는가도 흥미롭지만, 젊은 고객층이 로우로우에 열광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팬덤이라 할 만합니다. 로우로우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는 젊은 고객들의 애정을 담은 글들이 정말 많습니다. 로우로우의 성장은 이들 ‘자발적 영업사원’에 힘입은 바 큽니다. 실제로 단 두 가지 스타일만으로 로우로우 신발은 1년동안 1만 5천 켤레가 팔렸다고 합니다.

마케터는 항상 이 말을 기억하죠. ‘시대를 이해하고, 세대를 이해하고, 그 다음 개인을 이해하라’. 팩트리에와 로우로우를 만든 두 청년, 그리고 이들에 열광하는 젊은 층을 보면 명품에 열광했던윗 세대와의 확연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이미지가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는 세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세대, 막연한 글로벌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선 자리, 이 곳을 애정하는 세대. 한마디로 리얼리티의 세대가 보입니다. 우리는 더 리얼해져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