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가는 것의 제1 조건은 바로 ‘공간’이다. 그 공간이 옥탑방이든 9평짜리 고시원이든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혼자살기 전의 생활과의 완벽한 선긋기를 의미한다. ‘치타델레(Zitadelle)’는 독일어로 ‘요새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를 뜻한다.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수상록’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 덕분이었다. 몽테뉴는 37살까지 15년간의 판사생활을 정리하고 38세가 되던 해, 1000여권의 책을 들고 고향의 저택안에 있던 3층 원형탑 ‘치타델레(zitadelle)’에 머물면서 독서하고 글을 썼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수상록’이다. 1인 가구 시대가 부상하면서 공간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MBC 방송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서 엿본 이야기를 해보자. 육중완의 옥탑집과 황석정의 작은 월세집은 현실 그 자체의 솔직함과 적나라함으로 우리의 공감을 끌어냈지만 1인 공간의 방향을 던져주진 못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을 올리고 많은 공유를 끌어냈던 것은 다름아닌 헨리의 집이었다. 하나의 커다란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넓은 거실에 그랜드피아노와 멋진 가구를 배치하고 호버보드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해외를 많이 다니고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직접 구석구석 헨리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직접 도맡아 진행했다. 전체 공간 디자인도 그리고 주방도 디자인하고 벽도 파벽을 활용해 만들고 개인 등마사지를 위한 코너까지 이 모든 것이 헨리를 위한 공간이다. 방송직후 헨리의 쇼파 브랜드가 실시간 검색순위에 오르고 헨리 집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셀프 인테리어 관점의 분석이 시작되었다.

좋은 공간은 좋은 창작을 돕는 것일까? 헨리 집의 인테리어와 함께 이슈가 되었던 것은 그가 이 집에서 즉석으로 작곡을 하는 장면이었다. 루프 스테이션을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멜로디를 만들고 직접 코러스를 쌓는 모습에 장난스러운 헨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혼자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런 것이다. ‘혼자’라는 상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에서 생성되는 제대로 된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의 가능성 말이다. 사람은 어떤 의미로는 기계와 비슷하다. 인풋이 좋아야 아웃풋이 좋다. 당연하다. 제대로 먹고 충분히 쉬고 자기가 원하는 상태에 자신을 놓지 못하면 기대했던 퍼포먼스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몽테뉴가 원형탑 치타델레(Zitadelle)로 들어간 이유, 그리고 헨리가 오래 공들여, 돈들여 공간에 투자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진지한 얼굴로 건낸 헨리의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내 미래를 위해 만든 거에요.”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브랜드, 무인양품

1인 시대의 ‘공간의 밀도’라는 기준으로 꼽을 수 있는 브랜드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했다. 공간의 효율도 중요할 것이고 공간의 감성을 채워주는 측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좁은 공간을 다양한 취향으로 채울 수 있게 해주는 디자인도 중요하다. 여기에 가성비까지 고려한다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이케아(IKEA)겠지만 ‘공간의 밀도’라는 기준을 다시 떠올리면 이케아(IKEA)보다는 무인양품(Muji)이 더 적합하다.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얼핏보면 그냥 ‘심플한 제품들’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심플함에는 많은 관찰과 생각이 동반된다. 7000종이 넘는 무인양품의 모든 제품들이 나오기까지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실제 고객의 삶을 관찰하는 옵저베이션(Observation) 과정이다. 5개 분야 실무진이 실제 소비자의 집에 방문하여 제품이 놓여지고 쓰여지는 위치와 재질, 방법들을 관찰하는 과정이다. 실제 소비자의 삶에서 발견된 지혜를 담아 설득력이 아닌 ‘감화력(感化力)’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무인양품의 가장 강력한 힘은 설득력이 아닌 ‘감화력(感化力)입니다. 상품을 손에 쥔 순간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이것으로도 충분하구나’하고 알아차리게 하는 힘을 감화력이라 할 수 있어요. 그걸 알아차린 순간 그 사람의 가치관에는 커다란 전환이 일어납니다. 상품의 배경에 있는 가치관이나 철학이 전해지기 때문이죠.”
-하라 켄야 무인양품 디자인 고문

무인양품이 만든 집

가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인양품의 일부 매장에선 집을 구매할 수 있다. 이들의 철학을 오롯이 담아 오브제로서의 가구, 가전이 아니라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무인양품인 공간, 즉 집을 만드는 비전을 실현시키고 있다. ‘나무의 집’, ‘창의 집’, ‘세로의 집’ , ‘아침의 집’ 등의 모델 중에서 선택하고 토지의 형태에 따라 제안하는 20여 개의 디자인 중 선택하고 그 안에서 또다시 세부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집이다. 특히 ‘창의 집’은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설계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무인양품 집’, 그리고 소형주택 ‘무인양품 헛(hut)’이라는 프로젝트는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집요한 반영이다. 무인양품은 ‘다같이 생각하는 주거의 형태’라는 웹사이트를 열고 이 곳에 총 10만 건 이상의 설문조사를 통해 삶의 지혜와 실질적인 요구사항을 모아 무인양품 집에 적용했다고 한다.

도시에서 소형주택에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면 그 공간은 무조건 나의 휴식을 극대화 해주는 공간, 창조적 에너지를 배가시키는 공간, 즉 나만의 치타델레(Zitadelle)여야만 한다. 1인 시대의 공간의 밀도라는 관점에서 무인양품을 꼽은 가장 큰 배경은 이들의 집요함이다. 고객의 생활에 직접 들어가서 그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이들의 기획은 시작된다. 10만 건 이상의 질문과 답을 듣고 반영하는 것에서 이들의 제품개발은 완성된다. 1인 시대 개인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브랜드가 1인 시대의 승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