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와 오리진을 브랜드 컨셉과 연결하라
라이터 브랜드 지포(Zippo)가 여성형 향수를 내놓았다. 지포 라이터를 연상케 하는 패키지 디자인은 확실히 구매력을 자극한다. 모험심이 강한 워킹우먼을 위한 제품이라는 설명도 언뜻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 같다. 문제는 지포라는 브랜드 경험이 단지 시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한 라이터 기름 냄새가 구매를 꺼리게 하지는 않을까? 실제로 판매가 썩 신통치는 않은 것 같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브랜드들은 그만큼의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만들어가며 역사를 만들어간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오래된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시장의 관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변화의 한쪽 축은 언제나 그 브랜드의 기원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포의 경우에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 브랜드가 축적해 온 본질과 바로 연결되지 않는 이격(離隔)이 느껴지기 때문에 기존 고객에게도 새로운 고객에게도 쉽게 환영받기 어려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치 않을 DNA
결국 그 브랜드의 태생이 간직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신발 브랜드였던 탐스(Toms)가 아무리 확장을 하더라도 애초의 ‘One for one (고객이 하나를 구매하면, 그만큼 사회에 기부하거나 환원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비즈니스 카테고리를 확장할 수록 이 브랜드의 진정성이 더욱 또렷해지고 강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빠르고 앞서 변화해야 하는 IT 업계에서도 자신의 DNA를 매번 공들여 드러내는 집단이 있다. IBM은 인공지능 왓슨 등을 통해 ‘코그너티브 시대(cognitive era)’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Outthink’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더 깊은 생각, 새로운 사고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Outthink는 인지컴퓨팅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혁신적 제안인 동시에, 그들의 본질이 창립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있음을 인증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1917년 IBM이 내세운 ‘Think’라는 슬로건은 혁신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상징적 언어이기도 했다. 이 슬로건을 중심으로 IBM의 다양한 사업이 전개되었고, 언론의 관심과 함께 Think란 단어와 IBM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의미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창립자인 토마스 왓슨은 ‘사고’라는 가치를 가장 중요한 기업 DNA이자 조직 문화로 자리 잡히도록 노력해왔다. IBM의 역사와 전성기를 기억하는 많은 고객들에게 ‘Outthink’라는 키워드는 과거의 향수이자 미래에 대한 비전이 되는 절묘한 연결고리가 되는 셈이다.
속일 수도 없고 가공할 수도 없는 역사
국내의 많은 제조사들이 해외의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를 라이센싱하여 국내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왜 굳이 비싼 라이센스 비용을 들이면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일까? 역사라는 것은 쉽게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물리성을 뛰어넘어 가공된 역사를 획득하는 것은,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꾸밀 수 있어도 곧바로 본색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길고 짧은 것과 상관없이, 하나의 일관된 히스토리를 가진 브랜드는 그래서 강력하다. 아무리 포트폴리오가 확장되고, 리뉴얼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하더라도 브랜드가 가진 오리진과 히스토리 만큼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자산이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이비통은 자신의 기원이었던 ‘여행’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 시티가이드를 출간하며, 색에 대한 해석을 파는 팬톤은 해마다 올해의 컬러를 발표한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브랜드도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들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뜬금없는 사업을 벌이거나, 고객들이 그들을 지지했던 최초의 이유를 망각해버린다면 브랜드의 정체성은 흐려질 것이다. 그 반대라면, 가장 핵심이 되는 컨셉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더 강렬한 존재감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