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맥락과 브랜드의 맥락을 만나게 하라
시장(Market)의 주인공이 제품에서 경험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브랜딩의 과제는 보다 촘촘하게 엮어진 ‘관계’에 대한 것으로 요약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은 이제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눈만 뜨면 쏟아지는 뉴스와 유용한 정보들은 시간을 맞춰 특정 공간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열면 곧장 나를 찾아온다. 개개인이 운영하는 미디어들은 각자 설정한 환경에 따라 제각각의 정보와 컨텐츠를 제공받고 개인들은 이 컨텐츠에 수시로 반응하면서 각자 다른 경험의 맥락을 쌓아간다. 이렇게 쌓인 맥락은 빅데이터로 수집되어 다시 브랜드로 전달되고 더욱 정교한 맞춤정보가 다시 내게 제공된다. 개인이 반응한 사소한 공유와 감상은 그 자체가 변별성있는 나만의 맥락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브랜딩에서의 맥락(Context)이란 과연 무엇일까? 맥락, 즉 컨텍스트(Context)는 그 어원이 Con(=com, together)의 `함께`라는 뜻과 라틴어에서 온 textere의 `(천이나 직물 따위를) 짜다’라는 뜻이 합쳐진 의미이다. 직물을 짜나가듯 함께 무언가를 엮어서 만들어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고객의 ‘경험’이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요소로 등장한 이 시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 정교한 브랜딩의 기술을 요구한다. 브랜드는 고객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고객의 경험으로 쌓인 피드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 고객의 맥락과 브랜드의 맥락이 정확히 교차할 때 브랜드의 신화가 탄생한다.
조용히 세상을 엮어내고 있는 아마존(Amazon)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TV앵커가 ‘알렉사’가 내게 인형의 집을 주문해줬다’라는 인용을 방송에서 말하면서 방에 있던 많은 아마존 에코가 명령어로 인식해 각 집에 인형을 주문했다가 취소했다는 뉴스를 인상깊게 접했을 것이다. 이 해프닝은 아마존이 우리를 둘러싼 생활, 언어, 구매, 취향 등의 맥락을 얼마나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확보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해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아마존의 킨들(kindle)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온라인으로 전자책을 구매해서 사용할 뿐인데 하나의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글로벌한 연결, 그리고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말이다. 나는 그저 킨들에 메모를 적고 밑줄 그었을 뿐인데 전 세계 흩어진 사용자들에게 공유되어 수백 명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아마존 프라임을 경험한 사람은 그 엄청난 혜택의 강도를 체험했을 것이다. 온라인 매체 ‘쿼츠’에 따르면 아마존 프라임의 구독자는 미국에서만 6천3백만 명에 이른다.
‘아마존(Amazon)’이라는 브랜드로 수면 위에 떠오른 가시적인 서비스는 대표적으로 아마존 프라임일 것이나, 아마존의 생태계에는 수면 밑으로 우리의 시간과 마인드를 점유하는 수많은 분야가 존재한다. 아마존의 시간 지배는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된다. 알렉사(Alexa)라는 음성인식 비서를 통해 오늘의 날씨를 묻고 스케줄을 확인한다.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하이라이트 뉴스를 듣는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아마존에 의해 우리의 정보를 지배 당한다. 아마존 웹서비스를 통해 나의 데이터를,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구매의 시간을 지배 당한다. 계산대 없는 미래형 마트 아마존GO는 우리의 구매시간을 장악하려는 큰 그림의 대표적인 혁신의 모습이다. 생필품을 원클릭으로 주문하는 아마존 대시버튼(Dashbutton)은 고객의 구체적인 살림의 컨텐츠와 필요의 순간을 포착한다. 고객의 맥락(Context)을 읽어내 한 발 앞선 제안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고객의 맥락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그 맥락보다 한 발 앞선다는 것은 아마존에겐 어떤 의미일까? 아마존의 맥락(Context)는 분명하다. 조용히 영역을 넓히고 있는 아마존의 맥락은 ‘아마존이 만드는 생태계(Eco system)속에서 미래 소비자들의 시간을 장악하는 것’이다.
SSG는 왜 소비자에게 여백과 놀 거리를 제공했을까?
신세계의 SSG 광고가 처음 런칭하던 상황을 되새김질 해보자. 광고의 전체 내용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데 비주얼은 독특하고도 고급스러운 색감의 비비드한 강렬함이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정보를 굳이 몰랐어도 상관없다. 공유와 공효진의 연기는 뭔가 어색하지만 또 뭔가 있을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한다. “영어.. 좀 하죠? 이거 읽어봐요.” “쓱”. 짧디 짧은 대사와 광고 특유의 분위기는 몰입도 최고의 광고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패러디와 공유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광고 속에 제공한 긴 여백은 자꾸만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고 “쓱”이라는 짧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브랜드네임과 카피는 소비자들에게 놀거리를 던져준 셈이었다.
이 단순하고 썰렁한 광고는 자발적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시청하는 인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많은 이들의 공유와 반응의 배경에는 이 광고가 보여주는 이중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맥락은 어떤가? 고객이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내용 자체가 아주 재미있는 것, 그리고 컨텐츠 공유를 통해 스스로 돋보이는 것. SSG는 묘하게 이 둘을 다 담았다. SSG의 광고는 촌스러운 듯 세련됐고, 병맛스러우나 고급스럽다. 또 지루한가 싶더니 재미있다. 이러한 양면적 속성이 그대로 소비자들의 맥락과 맞아떨어지니 그 파급효과가 더욱 강력해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맥락 속에 존재한다.
건축과 브랜드는 여러모로 유사하다. 우선, 건축을 할 때 모든 것이 고려된다. 기온과 강수량, 주변의 건축재료는 건축의 기본조건을 만든다. 건축가는 건축물이 올라갈 터의 역사와 주변환경을 고려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축의 고려요소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 공간을 사용하게 될지 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고려된 건축 그리고 도시는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브랜딩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역사와 지금 선 자리의 조건을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다각도로 생각하고 우리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를 고민한다. 모든 것이 고려된 브랜드는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브랜드가 제안하는 프레이밍을 통해 사람들의 판단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건축과 마찬가지로 브랜딩은 ‘사람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핵심일 수 밖에 없다.
고객과 고객, 고객과 브랜드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엮여있는 시대, 즉 모든 것이 연결된 시대의 브랜딩은 단언컨대, 고객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어는 순간 한꺼번에 만들어지는 맥락은 없다. 가느다란 실을 한 올, 한 올 짜듯 사소하고 빈번한 관계 속에서 쌓인 맥락을 통해 고객과의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