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브랜드 경험을 기획하라

이슈는 오프라인에 있었다. 2015년 11월 아마존은 첫 번째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고, 이마트의 일렉트로마트, 현대백화점 판교점,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사람들의 발길을 모았다. 온라인의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을 강화시켰다.

온라인에서의 쇼핑과 커뮤니케이션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원하는 제품을 싸고 빠르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제품 구색이 많지도 않고, 가격도 더 비싸며, 물건을 직접 들고 날라야 하는 오프라인은 초라해 보였다. 몇몇 마트, 슈퍼는 온라인 유통을 상대로 가격경쟁을 선포하기도 하고, 배송 속도를 시간 단위로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전략은 진화했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이 줄 수 없는 경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온라인 쇼핑 경험은 획일적이다. 그리고 아마존으로 상징되는 온라인 쇼핑, 그들의 ‘방대한 제품, 저렴한 가격, 편리성’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는 ‘문화’로 요약되는 공간의 분위기와 경험뿐이다.

획일성을 벗어난 큐레이션

일본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은 한국의 오프라인유통 기업에게 적잖은 자극을 주었다. 온라인 유통에 맞설 수 있는, 아니 온라인 유통이 구현할 수 없는 오프라인만의 강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구색, 가격, 편리성을 버리고 츠타야가 선택한 무기는 ‘가치제안’이다. 책의 양은 많지 않지만, 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선별된 책을 새로운 방법으로 진열한다. 이름은 서점이지만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게 해주는 모든 것이 있다. 요리책 옆에는 요리재료와 도구가, 여행책 옆에는 여행사가 있는 식이다.

한국의 오프라인 유통도 많은 제품을 획일적으로 분류 전시하던 방식을 버리고 라이프스타일 등 가치제안을 따라 공간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간 소규모 편집샵이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해오던 큐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는 것.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지역 밀착형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며 2015년 8월 문을 열었다. 가장 고전적인 유통업태인 백화점도 변화를 빗겨가지는 못했다. (현대백화점이 판교점을 ‘더현대’라 명명한 것은 상징성이 있다.) 판교점은 ‘현대멘즈관’을 마련, 패션 취미 등 남성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것을 하나의 공간에서 소화하고 있다. 현대어린이책 미술관으로 판교지역의 가족타깃을 흡수한다. 여행용품 판매와 여행사 서비스를 묶은 트래블 갤러리 역시 눈에 띈다. 이는 중장년층 여성 타깃, 여성복과 해외명품 위주의 MD라는 기존 백화점의 룰을 깨는 시도들이다.

하이마트가 독주하던 통합가전 전문점 시장에도 새로운 변화가 보인다. 이마트가 런칭한 일렉트로마트는 여러 측면에서 가전양판점의 상식을 깬다. 타깃은 ‘남성’이다. ‘남자들의 놀이터’를 컨셉으로 생활필수품으로서의 가전이 아니라, 취미용품으로서의 가전을 제안한다. 딱히 가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주류, 캠핑용품, 안경점, 뷰티&바버샵 등 남성들이 원하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갖추었다. 바에 들려 드래프트 맥주 한잔으로 쇼핑의 피로(?)를 풀거나, RC카 서킷이나 드론 체험존에서 제품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가치제안을 담은 큐레이션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줄 수 없는 것 바로, 체험과 경험을 강화한 형태다.

로컬화는 필연적 결말

유통업체들은 포맷다변화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어느 점포에서든 같은 제품,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이 맥을 못 차릴 때에도 편의점만은 호황을 누렸다. 경기불황과 가구형태 변화에 따라 대량구매보다는 소량을 반복 구매하는 패턴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 편의점이 그만큼 변화에 빨리 대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CU는 공격적인 로컬화를 보여준다. 점포의 입지 특성에 맞추어 특화서비스를 부가한다. 대학가에 위치한 점포는 학생들을 위해 문서 출력, 복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장인 밀집지역 점포는 점심식사 공간과 안마의자 등 편의시설을 선보이는 식이다. 클럽/술집을 즐기는 고객과 외국인을 위해 물건보관서비스를 제공하거나(CU 이태원프리덤점), 여학생들을 위해 파우더존을 마련하는(CU 덕성여대학생회관점)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이 시대의 ‘편의’를 발견해나가고 있다. 비단 편의점만이 아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역시 지역에 거주하는 30~40대 가족을 타깃으로 한다. 삼성디지털프라자 홍대점은 입지의 특성을 반영해 모바일제품군을 강화하고, 젊은 층을 위한 휴식, 여행, 운동 등 테마별 체험공간을 운영한다.

브랜드의 철학과 맥락의 경험

팝업스토어, 플래그십 스토어 등 브랜드의 공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아무런 노이즈 없이 오감으로 온전히, 브랜드를 체험하게 할 기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브랜드 공간은 언제나 중요했다. 다만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 변화했을 뿐이다. 제품을 중심에 놓지 않고, 고객이 제품을 소비하게 되는 맥락을 보여주는 방식이 눈에 띈다. 목이 말라 탄산수를 마시는 게 아니듯이 제품의 특성을 강조하는 게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팝업 북카페 ‘모카책방’을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모카골드를 무료로 제공하고, 7천권의 책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다. 여유와 낭만의 회복, 모카골드가 소비되는 맥락을 새롭게 제안하는 공간경험이다. 브랜드 공간이 반드시 외부와 분리된 브랜드만의 공간일 필요는 없다. 분리는 브랜드 경험을 강렬하게 만드는 강점이 있고, 연속은 우리가 브랜드를 경험하게 되는 생활 속 맥락과 비슷하게 자연스러운 감정적 본딩을 도모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나미는 단순한 디자인과 기능을 지닌 볼펜일 것이다. 동대문과 홍대에 문을 연 모나미 플래그십 스토어는 모나미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공간이다. 동대문 DDP에 위치한 매장은 달력을 컨셉으로 공간을 꾸몄다. ‘일, 월, 년. 매일의 삶의 기록. 펜을 넘어서 그곳에 모나미’라는 굵고 담백한 문구는, 1960년부터 국민펜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기록해온 서사의 툴임을 강조한다. 홍대점은 감성 라이프 문화공간을 표방한다. 기록의 도구에서 생활예술의 도구로 새로운 브랜드의 맥락을 선보인다. 모나미 제품을 이용해 우드아트와 무스토이, 에코백, 파우치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이 있고, 무엇보다 종이를 컨셉으로 한 외관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펜의 이야기’가 아닌 펜이 쓰이는 종이를 표현해 건물 자체가 커다란 흰색 캔버스처럼 보인다. 모나미는 ‘각각의 사람들이 펜이 되어 컨셉스토어라는 같은 페이지에서 공감하길 바라는’ 의도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제품의 배치, 제품과 고객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 아웃/인테리어가 조화되어 브랜드 철학을 오감으로 전달하고 있다.

디지털 기업의 오프라인, 그 명확한 목적

와비파커(Warby Parker), 보노보스(Bonobos), 틱테일(Tictail)의 공통점은? 모두 디지털 기업이면서 최근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고객과의 물리적 접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오프라인 매장은 개인화된 서비스와 그들만의 이야기를 경험하기 위한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순히 판매를 위한 접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라인 안경 쇼핑몰 와비파커(Warby Parker)는 40여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 온라인에서는 고객이 직접 자신의 시력과 눈 사이의 거리를 입력해 주문을 완료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어려워하는 고객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고 어느덧 40여개에 이르렀다.

온라인 남성의류 쇼핑몰 보노보스(Bonobos)는 가이드샵이라는 형태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 보노보스는 애초 ‘남성들에게 의류쇼핑은 고통’이었다며 ‘고통 없는 쇼핑’과 ‘완벽한 핏’을 약속한 온라인 브랜드다. 오프라인 매장도 철저하게 그 약속을 지킨다. 가이드샵은 옷을 직접 판매하지 않는다. 예약을 하고 방문한 후 1대 1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옷을 고르고 직접 입어본다. 매장을 나올 땐 빈 손이다. 온라인처럼 고객의 집으로 무료 배송해주기 때문이다.

독립디자이너들의 마켓플레이스인 틱테일(Tictail) 역시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처음에는 휴일을 겨냥한 팝업스토어였으나 뉴욕의 매장으로 자리잡았다. 판매를 하긴 하지만 전세계 패션, 쥬얼리, 홈데코 디자이너들의 쇼케이스 역할이 더 크다. 각 상품마다 작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고객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이런 공간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그들은 물건이 아니라 스토리를 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