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4.0의 시대이다.
마케터들에게는 곤욕이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에 마케팅을 해야 하니 말이다. 제품의 효능을 아무리 강조해도 먹히지 않는다. 좋은 제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강조해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조그만 장애에도 사람들은 곧장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간다. 로그인이 필요한 온라인 쇼핑몰, 계산대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오프라인 상점은 곧바로 탈락이다. 지금 마케터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제품도 플랫폼도 아닌 고객이다. 마케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객의 소비에 대한 관념과 관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하고 깊이 이해하는 것뿐이다. 경쟁사와 대별되는 포지셔닝, 과거의 성공을 교훈삼는 벤치마킹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모두다 빠르게 변화하는 고객의 삶 속에서 함께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고객의 변화한 삶 그 자체와 그 변화를 불러온 환경, 특히 미디어 환경을 바라보며 우리의 제품과 플랫폼이 갖는 의미를 재해석해내야만 한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간 쌓아온 히스토리, 명성, 계급장 모두 떼고 용기 내어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러나 과연 그걸로 충분할까? 지금의 브랜딩, 마케팅이 진짜 어려워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진짜 이야기는 이 다음부터이다. 자기 이야기에 대한 고객의 피드백, 크던 적던 자기 이야기에 반응한 적나라한 피드백과 마주쳐야 한다. 이 과정이 없으면 용기내어 애써 꺼낸 자기의 이야기는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반응한 고객이 적으면 적을수록 어떤 이들이 반응을 했고 어떤 점에 호응을 했는가를 반영해야 한다. 많은 고객이 움직였다면 그 유입경로도 면밀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반응한 고객의 허수와 진수를 가리는 일, 진수의 고객과 진짜 소통을 다시 계획하는 일, 허수의 고객을 당신 쪽으로 이끄는 일, 이것이 진짜 당신의 이야기를 고객과 함께 엮어가는 과정이다. 개개인에게 주어진 미디어는 점점 공평해지고 있고, 브랜드들의 미디어는 과거처럼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소유할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개개인이 설정한 다양한 미디어에서 제공받은 정보와 컨텐츠에 반응하며 쌓인 경험의 맥락은 빅데이터로 수집되어 브랜드로 전달되고 더욱 정교한 맞춤 정보로 재가공되어 개인에게 제공된다. 이렇게 정교하게 엮고 엮이는 관계, 이 과정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맥락(Context)이다.
혼돈의 시대에 ‘맥락(Context)’으로 브랜딩하기
그렇다면 브랜딩에서의 맥락(Context)이란 과연 무엇일까? 맥락, 즉 컨텍스트(Context)는 그 어원이 의미심장하다. `함께`라는 뜻의 ‘Con(=com, together)’과 라틴어에서 온 ‘textere`(천이나 직물 따위를) 짜다’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이다. 직물을 짜나가듯 ‘함께’ 무언가를 ‘엮어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뜨개질이던 레이스뜨기던 한 번이라도 직물을 짜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지루하고 하찮은 씨실날실 반복구간에서는 알지 못한다. 결국 그 어떤 모양이 나올지, 이 과정으로 과연 쓸만한 무언가가 만들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지리한 반복을 최대한 균일하고 끊김없이 이어가다 보면 이 반복의 끝이 보이고 멋진 스웨터로 혹은 근사한 식탁보로 완성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앉아서 엮는 과정이 이러할 진데 맥락은 이 과정을 ‘함께(con-)’ ‘엮는 것(textere)’으로 규정한다. 당연히 더 반복과 무늬와 더 많은 가로, 세로의 직조구성이 생길 것이다. 또한 당연히 더 많은 무늬의 더 다양한 솜씨로 완성품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어느 일방의 이야기나 일방의 반격이 아니다. 가로와 세로, 30도와 60도, 동쪽과 남쪽 등 여러 앵글의 관점과 의견이 다각도의 방향으로 촘촘하게 엮여서 만들어지는 연결의 결과물이 이 시대의 브랜딩이다. 기업에게 요구되는 대응 역시 시시각각의 진화와 혁신을 요구한다. 나이키의 스테판 올랜더 부사장과 나이키의 모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했던 광고회사 AKQA의 아자드 아메드는 입을 모아 이렇게 얘기한다. ‘나이키의 모든 활동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면 벨로시티(velocity:속도)이다. 속도혁명의 시대엔 언제나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며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며 실행이다.’
고객의 ‘경험’이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요소로 등장한 이 시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 정교한 브랜딩의 기술을 요구한다. 브랜드는 자기의 이야기보다 고객을 전제로 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고객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고객의 경험으로 쌓인 피드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 고객의 맥락과 브랜드의 맥락이 헐거움없이 단단하게 교차할 때 그 브랜드는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