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시대에 ‘공간’을 재발견하다

스타벅스의 국내 1000호 점이 청담동에 오픈했습니다. 1999년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17년 만입니다. 한참 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잠깐 스타벅스 이미지가 쇠락하는가 싶더니 어느 새인가 좀 더 새롭고 더 뭔가 기대감을 주는 공간이 되어갑니다. 자연스럽게 리뉴얼된 공간, 디지털이 결합된 서비스, 그럼에도 여전한 아날로그 호출, 시즌별로 새로운 MD상품, 연말 다이어리의 매력 등이 그렇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리테일 공간의 조건은 이것이 전부일까요?

‘개념’설계가 우선

브랜딩을 직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탐나는 것은 스타벅스의 DNA, ‘제3의 공간(The 3rd Place)’라는 그들의 개념설계입니다.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스타벅스의 DNA인 ‘제3의 공간(The 3rd Place)’를 되뇌이곤 했습니다. 이 마법과도 같은 컨셉은 시대의 변화를 유연하게 흡수해 버립니다. 최근 혼밥, 혼술을 말하는 이 시대에도 스타벅스의 컨셉은 유효합니다. 이제 1000개가 넘는 스타벅스에는 왜 여전히 갈 때마다 자리가 없는 걸까요? 스타벅스는 혼자 오랫동안 편하고 멋지게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단순히 커피라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공간’을 제공하는 브랜드를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시대의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오프라인은 제품구매의 공간이 아닙니다. 혼자 있으면서 편하지 않은 공간들은 공간이 아니라 제품을 팔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서점 츠타야와 스타벅스가 콜래보레이션 한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서점을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제안’을 주는 공간으로 정의한 츠타야는 스타벅스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은 츠타야가 하듯, 스타벅스가 하듯이 온라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각적 만족함과 새로운 제안이 ‘공간’이라는 아늑한 자원이 충분히 어필되어야 합니다.


몰입(Immersion)의 공간

브랜드 공간은 기본적으로 ‘몰입’의 경험이 목표입니다. 브랜드로 빠져들게 하고 여타 인테리어가 아니라 브랜드 그 자체가 여러 감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매장의 존재이유는 제품의 브랜딩이 고객 가까이서 보여지게 하기 위한 것이며 오프라인 매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딩은 상품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전세계 어떤 매장도 같은 매장이 없다고 하는 자연주의 화장품 이솝(Aesop)의 매장의 경험은 나에게 맞는 허브티 한잔으로 시작됩니다. 기다리는 다른 고객에 영향받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서비스 응대는 ‘많이 팔기보다는 좁게 팔고 싶어하는’ 이 회사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면모입니다. 애플스토어는 단연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돋보이는 공간입니다. 외관이 독특한 것, 인테리어가 세련된 것 이 모든 것은 제품과 서비스의 분위기와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며 브랜드가 잘 보여지고 느껴져서 몰입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새로움을 연결하는 공간

왜 그곳에 가는가? 편리와 속도가 지배하는 온라인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오프라인 경험은 점점 더 특별함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공간 브랜딩이, 기존 공간의 정체성을 만들고 가치 부여를 하는 과정이었다면, 새로운 기술은 기존 공간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계산대 없는 미래형 마트를 제시한 Amazon Go가 보여주었듯이, 기술의 창조적 조합은 서비스의 방식마저 기존의 형태를 파괴합니다. 레노버를 통해 탱고(Tango)를 지원하는 최초의 스마트폰 ‘팹2 프로(Phab 2 Pro)’를 공개한 구글은 공간을 새로운 정보 플랫폼으로 삼겠다는 비전을 공표한 셈입니다. 새로운 공간이 창조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경험이 창조됨을 의미합니다. 온라인 시대의 공간은 기존 공간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사고의 틀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개인이 반영되는 공간

잘 쌓인 취향은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퀸마마마켓은 보여주었습니다. 명성을 떨치던 패션디자이너 부부는 자연스럽게 의식주 모두를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로 그들의 개성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조합의 레스토랑이 가능한 것은 온라인 시대이기에 가능합니다. 이 특이함들이 입소문을 타고 하나둘 확장된 것이 장진우 거리가 되었습니다. 온라인 시대가 되면 모든 것이 온라인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은 이 시대에 맞는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을 찾고 심지어 스스로 공간을 창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가 아니라 그 공간이 연결해 주는 새로움입니다. ‘소비자’가 아니라 ‘팬’, 그것도 ‘광팬’과 소통해야 하는 시대의 공간에서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입지도, 인테리어도, 기술도 아닌 유니크한 관점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불고 있는 동네서점의 열풍은 ‘개인’의 힘, ‘사람’의 힘을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는 망할 것이 자명한 동네의 책만 빼곡했던 작은 서점들이 ‘공간’에 주목하면서 서점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책방 주인의 관점이 들어가냐에 따라 각각 다른 지적 매력을 풍기는 공간이 되었고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활동을 불러들입니다. 지금 동네서점은 책과 만남과 문화와 맛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제이앤브랜드의 1년을 돌아보니 그간 작업했던 프로젝트들 중 유난히 ‘공간’에 관한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3건은 푸드마켓, 자동차, 토탈인테리어의 오프라인 공간이었고 다른 3건은 온라인 공간에 대한 브랜딩이었는데 각각 식음료 온라인 플랫폼, 통신 플랫폼, 프리미엄 푸드 큐레이션몰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브랜딩 트렌드의 주제로서 ‘공간’은 매우 적절해 보였습니다. 특히 온라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프라인으로 연상되는 ‘공간’이라는 것은 복잡미묘하게 우리의 생활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지라 그 맥락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공간을 기획하는 이는 누구든 이제 고객을 제품을 팔아줄 단순한 구매자로 생각하고 공간을 구상해선 안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공간에서 크고 작은 오브제들, 컬러와 향기, 사운드와 응대를 접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그의 취향과 내면을 알게됩니다. 고객을 가장 가까운 연인 혹은 친구라는 생각으로 기획된 공간만이 온라인 시대에 의미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