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접한 첫 반응은 좀 부끄럽고 씁쓸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이 한국산 자사 짝퉁에서 영감을 얻어 공식 짝퉁 캡슐 컬렉션을 만들고 한국 소비자에게 정품 가격으로 팔았다는 베트멍 코리아 익스클루시브 페이크 캡슐 컬렉션 이야기다. 전세계 중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이 컬렉션의 가격대는 베트멍의 일반 컬렉션과 동일하게 티셔츠 한 장에 70만원을 호가한다. 유난히 카피가 많은 한국 시장에서만은 짝퉁을 재해석해 오리지널의 가치를 전달하겠다는 풍자 섞인 이벤트였다.
씁쓸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들은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프레이밍(Framing)’의 기술을 잘 알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오래갔다. 브랜딩(Branding)이라는 것, 결국 브랜드만이 가진 시각과 의도를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존재감을 만드는, 그야말로 프레이밍의 기술이 아니었던가? 원래 프레이밍은 사진 용어로,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를 파인더(피사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보조 렌즈)에 적절히 배치해 화면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파인더에 화면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느낌과 구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생각의 틀(Frame)에 따라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결국 각자의 의도된 앵글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기술’이 관건이다. 새로움이라는 시도가 순수하게 전달되기 어려운 복잡성과 의심이 지배하는 시대를 사는 브랜드들이 시도할 수 있는 프레이밍의 기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기준을 흔들라
현대사회는 하나의 용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하는 행동과 관념이 존재한다. 브랜드의 의미 있는 프레이밍은 바로 이 사이에서 발생한다. 하나의 용어로 설명되지는 않으나 대다수의 통념이 존재하는 이 사이에서 통념과 기준을 흔드는 프레이밍을 보여줄 때 그것은 또 하나의 가능성과 새로움으로 인식된다. 기존 서점은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연상시키지만 ‘북 바이 북’이라는 동네서점은 ‘술을 마시면서 책을 본다’라는 프레이밍을 던졌다.기존 서점의 기준을 흔들어 보니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활동이 따라붙었다. 주변 음식점들과 제휴해서 맥주 안주를 공급해 공존을 꾀하기도 하고 뮤지션, 저자들을 만나게 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대형 주류회사로부터 생맥주를 공급받는 유일한 서점이 됐다.
암스테르담의 새로운 슈퍼마켓 빌더앤 르클러크(Bilder & Clercq)는 제품 중심의 보통 슈퍼와는 달리 ‘레시피’ 중심의 상품구성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요리에 필요한 레시피에 딱 필요한 만큼 정량의 재료를 세련되게 진열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 뭐 먹지?’로 막연하게 슈퍼에 들어온 고객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제안을 하는 신선한 상품구성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슈퍼가 하던 방식과 기준을 조금 벗어낫기에 가능했다.
눈과 시간을 뺏도록
신세계 스타필드(Starfield)의 경쟁은 유통 브랜드가 아니라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나 야구장이라고 정용진 부회장은 야심차게 얘기한다. 물건만 파는 쇼핑몰에는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듯 축구장 70배가 넘는 이 쇼핑 테마파크에 고객이 머무는 시간은 쇼핑몰이 아닌 테마파크나 야구장에서의 시간과 비슷할 것도 같다.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 같은 업종이 아닌 이종업 간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고객이 보내는 시간(Time Share)’, 그리고 남다른 ‘제안력(Framing)’이라는 맥락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많은 변화와 혁신 그리고 기술의 발전을 거듭해 물질의 풍요를 이뤘지만 시간의 풍요는 이루지 못했다. 이제 기업과 브랜드들은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고객의 시선과 시간을 뺏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레이밍을 할 수 있는가?’라는 두 개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오리지널리티
프레이밍의 목적이 단순히 이슈와 화제성 유발에 있어선 안 된다. 프레이밍의 목적은 무조건 그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프랑스 패션브랜드 베트멍은 단지 화제성을 유발시키려고 코리아 익스클루시브 페이크 캡슐 컬렉션을 개최했던 것일까? ‘5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열린 이 행사는 전날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 수백명의 고객이 모여들었고 빠른 시간 안에 모두 품절됐다. 베트멍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이슈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로서 더욱 희소하고 독보적인 가치를 높였음에 틀림없다.
한국의 카피문화를 보고 ‘내 작품을 베낀 것을 다시 베껴 재판매하겠다’는 행사를 개최한 이면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카피문화 그 자체를 비틀어버리는 위트와 은근한 경고가 동시에 담겼다. 물론 이날 판매된 캡슐 컬렉션도 곧 카피돼 ‘카피를 카피해서 발표한 것을 또 카피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명품브랜드도 시도한 적 없는 한 번의 강한 프레이밍으로 베트멍은 ‘카피를 컬렉션 했는데도 완판된 브랜드’로 남게 됐고, (이 브랜드를 유명케 한) 지드래곤과 리한나를 넘어서 더 많은 이들의 욕망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끔찍한 것, 바로 ‘진부함’을 깬 프레이밍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