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에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9월이었다. 센트럴파크의 햇살. 록펠러 전망대의 야경. 장조지 레스토랑의 풍미와 블루노트의 흥취. 화려한 네온사인의 타임스스퀘어.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상점 메이시스 백화점(2009년 신세계 센텀시티가 생기기 전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메이시스 백화점 외벽에는 여전히 이 문구가 붙어 있다).

‘뉴욕’ 하면 떠오르는 이 공간들을 나는 어김없이 찾아갔고 실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큰 감흥도 없었다. 사진하고 똑같은 풍경, TV에서 봤던 그거, 블로그로 읽었던 이 감정. 말하자면 원본과 사본을 대조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나는 기쁨도 실망도 없이 인증샷을 찍고 돌아섰다.

흥미로운 공간은 따로 있었다. 슬립노모어 공연장인 매키트릭 호텔, 나이트호크 시네마, 하이라인 파크와 브루클린이 그랬다. 소개해본다. 당신이 꼭 방문해야 할 뉴욕의 공간들, 그 곳이 특별한 이유.

매키트릭 호텔: 관념, 관습, 관계가 역전되는 공간

매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은 몰입형 연극 ‘슬립노모어(Sleep no more)’ 공연장이다. 볼룸이 있는 1층, 로비와 다이닝 공간이 자리한 2층, 그리고 3층부터 5층에 위치한 객실이 모두 연극의 무대다.*

호텔 전체가 무대. 거꾸로 말하면 무대가 없다. 우리가 알던 대로, 하던 대로 지정된 좌석에 앉아 다 함께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중앙이 없다. 여러 배우들이 1층의 볼룸에서, 2층의 바에서, 4층의 객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관객들은 흰 가면을 쓰고 입장한다. 입구는 엘리베이터. 공연 내내 흰 가면을 벗지 않을 것, 말하지 않을 것, 배우를 방해하지 않을 것. 세 가지 약속을 하고 관객들은 층마다 임의로 흩뿌려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공연은 시작된다. 그러나 내 눈앞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텅빈 통로가 있을 뿐. 어느 배우도 내 시야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가장 당황스럽다. 알고 가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멍하니 혼자 통로에 남겨진 나도 정신을 차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공연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가면을 고쳐 쓰고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배우를 찾아 뛰기 시작한다.


관객에게 둘러싸여 배우는 연기한다. 무대가 없으니 경계선도 없다. 배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충분히 원하는 만큼 다가선다. 서도 되고 앉아도 된다. 꽤 자주 배우들은 관객을 끌어들인다. 관객과 포옹하거나 키스를 하고, 함께 내기도 한다. (나는 내기에 져서 데낄라를 마셨다. 진짜 데낄라를 주다니) 군중 속에서 어느 관객의 손을 잡고 객실로 도망쳐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관객들은 공간의 새로운 법칙을 깨닫는다. 이 공연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룰대로 공연을 진행한다. 흰 가면은 능동성을 자극한다. 좋아하는 배우를 따라다니거나, 몇몇 공간에 주목하거나, 공간이 주는 단서들-인테리어와 소품-을 탐색한다. 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맞춰나가,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한다. (물론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공연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키트릭 호텔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왜 그럴까. 메이시스나 센트럴파크는 왜 특별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곳에서 나의 고정관념과 습관, 그리고 역할이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시스는 여느 백화점보다 컸지만 나의 무엇도 흔들거나 바꾸지 않았다. 센트럴파크는 서울숲과 다른 풍경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관광객이거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주목 받는 공간에는 관념, 관습, 관계를 바꾸는 핵심장치가 있다. 매키트릭 호텔이 중앙을 해체해 공연의 주도권을 관객에게 넘긴 것처럼. 교보문고의 100인의 독서테이블, 북바이북의 맥주 한잔, 일렉트로마트의 구색이 그렇다. 더 크거나 더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경험을 바꾸는 핵심 하나가 있을 뿐이다.

나이트호크 시네마: 스크린의 밖으로 확장되는 스토리

부르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나이트호크 시네마(Nitehawk cinema)는 식사를 제공하는 영화관이다(Dine-in cinema). 한끼 식사로 충분한 햄버거나 스테이크, 각종 술과 치즈 플레이트 같은 안주를 주문할 수 있다. 특별한 점은 영화에 따라 특별한 메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 특정 음식이나 술이 나온다면 그것을, 그렇지 않다면 영화와 어울리는 것을 제안한다.

나는 흑백영화 ‘냉혈한(In cold blood)’을 봤다. 트루먼 카포티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발표 50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칵테일을 즐기며 입장을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50주년을 기념해 소설책과 기념티셔츠를 미리 객석 바닥에 놓아둔 것. 아쉽게도 내 의자 밑은 비어있었지만, 친구는 책 한 권을 얻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햄버거와 햄/치즈 플레이트 그리고 술을 주문했다. 부족하면 영화 중간에도 주문할 수 있다. 특정한 곳에 주문서를 꽂으면, 스탭이 귀신처럼 나타나 이를 가져가고 어느새 음식을 가져온다.

지금 상영작을 보니 1988년 영화 스쿠르지다. 역시 크리스마스. 드레스 코드는 ‘Ugly sweater’란다. 영화 배경에 맞춰 옛날 두껍고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고오라는 주문이다. 특별메뉴가 네 가지나 된다. ‘Give me a goose’를 주문하면, 구스베리 타르트가 나온단다. (추레한 스웨터에 어울리는 썰렁한 농담!)

나이트호크 시네마는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가만히 앉아서 눈으로 즐기지 마라. 영화에 어울리게 입고, 영화를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경험하라고 말이다. 즐겁다. 스크린 너머로 이야기를 확장하되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한다.

하이라인과 부르클린: 포개지는 시공간

복기지(複記紙 , Palimpsest)라는 말이 있다.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썼던 글자를 지우고 새롭게 쓴 것, 그래서 예전 글자와 후에 쓴 것이 겹쳐 보이는 것을 말한다. 건축으로 치면 역사적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 혹은 그 흔적이라 하겠다.

하이라인은 말 그대로 고가철도다. 과거 화물 노선으로 활용되다 버려진 철길을 공원으로 바꾸었다. 2.33km에 이르는 이 고가 공원은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첼시마켓, 휘트니뮤지엄 등 관광객의 주요 거점을 관통하기에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된다.

지상보다 높아 경관이 좋고, 건물과 맞닿거나 관통하면서 지나는 길이라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공원에 남아있는 흔적이 좋았다. 철길을 따라 걷다가 철길 모양을 형상화한 벤치에 앉아 쉰다. 2016년의 뉴욕이 아니라 과거의 뉴욕을 상상해본다. 완공된 1934년에서 마지막으로 운행되었던 1980년대까지, 항만에서 도심까지 기차는 무엇을 싣고 달렸을까. 매일 성장하던 미국 그리고 뉴욕은 지금과 다른 활기로 넘쳤겠지 하며 사색에 빠진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은 윌리엄스버그와 덤보를 포함한 브루클린 일대는 우리나라의 성수동 같다. 공장이 많고, 공장을 개조한 크고 작은 갤러리와 부티크들, 그리고 그래피티가 다채로운 주택가가 있다. 하이라인이 복기지와 같다면, 브루클린은 복기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광경은 정돈되지 않았지만 활력이 넘친다. 예술가들의 흔적은 그 활력을 배가한다.

뉴욕에 간다면 비싼 맨하탄이나 싸지만 정돈된 뉴포트보다는 윌리엄스버그에 머물러보시길. 포트그린의 벼룩시장에서 뉴욕 여피들의 생활감각을 엿보고, 덤보의 부티크에서 신진 디자이너의 독특한 옷도 입어보라.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 사일런트 반에서 그들과 얘기도 나눠보고, 니팅팩토리에서 핫한 밴드와 힙합뮤지션의 공연도 즐겨보라. 변화하고 있는 뉴욕, 젊은 뉴욕을 만나고 싶다면 브루클린이다.

매키트릭 호텔의 역사 >> 매키트릭 호텔은 1939년 완공되었다. 당시 뉴욕에서 가장 럭셔리 호텔로 만들어졌지만, 불행히도개장 6주 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호텔은 폐쇄된다. 그 후 구조 및 내부 집기 모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가, 연극기획사 펀치드렁크가 이를 개조해 지금의 공연장이 된 것. 이 드라마틱한 사연은 미안하지만 가짜다. 이 호텔 아니 이 건물은 맨하탄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 5층짜리 창고였고, 이 연극을 위해 오래된 호텔처럼 개조되었을 뿐이다. (허구지만 호텔의 역사는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홈페이지 자체가 ‘슬립노모어’가 아니라 ‘매키트릭 호텔’로 되어 있다) 슬리노모어 관람객은 연극 입장 전, 라운지 바에서 머무른다. 이 공간은 현실과 연극을 잇는 중간계와 같다. 인테리어는 연극 속 시대로 꾸며져 있고 라이브 밴드는 옛 노래를 부른다. 배우들은 고풍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관객들과 어울린다. 연극과 현실이 섞이기 시작한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이미 나는 연극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매키트릭 호텔이라는 허구의 역사적 공간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극 전과 후,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리는 하나의 장치로서, 허구의 역사를 공연장 전체에 입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