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온전히 향유하는 공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가게가 무엇일까? 체감상 ‘카페’가 아닐까 싶다. 간혹 처음 방문하는 지역에서 몇 블럭을 가도 카페가 나오지 않을 때는 당혹감이 느껴진다. ‘아직도 카페 미개척지가 있다니?’하는 놀라움. 이러한 대한민국의 모든 카페는 태생적으로 스타벅스를 이미지의 기준점으로 삼는다. 모두가 다 같은 레벨에 다다르지는 않지만, 스타벅스가 만들어낸 공간의 이미지는 여타 카페들의 독창성을 본질적으로 파괴한다. 새로운 카페는 늘 생겨나지만, 진짜 새로운 카페는 그래서 등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도, 아예 뿌리가 다른 브랜드의 확장이 카페에 다다를 때 간단히 깨진다. 대표적으로 몰스킨과 팬톤이 연 카페가 그러하다. 카페에 기대하는 기본 정서에 브랜드의 가치를 진하게 녹이니,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블렌딩(Blending)이 탄생한다.


몰스킨(Moleskine)은 2016년 7월 이탈리아 밀라노에 카페를 오픈했다. 몰스킨은 스스로를 노트나 수첩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아직 글자가 쓰여지지 않는 책(Unwritten book)으로 규정한다. 앙리 마티스, 앙드레 브레통, 빈센트 반 고흐,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 등 수 많은 예술가들이 애용하며 세상으로부터의 영감을 이 작은 노트에 담아냈다는 역사가 그들의 정체성을 뒷받침한다.

단순한 노트가 아닌 ‘삶을 담는 공간’, ‘창의성과 상상력 발현의 매개체’로 자리잡은 몰스킨은 스토리, 창의성, 경험, 여행, 아이디어의 공유 등과 같은 몰스킨의 핵심가치를 카페라는 공간에 녹여냈다. 몰스킨 노트를 공간으로 옮겨 놓은 듯한 심플한 디자인과 뉴트럴 톤의 내부 인테리어는, 모던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작업공간을 필요로 하는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제공된다. ‘For your daily fix of inspiration’라는 메세지는 이 카페가 단지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창작의 플랫폼임을 강조한다.

감성의 공간에서 소멸되지 않을 감성

미국의 색채 전문 기업 팬톤(Pantone)도 앞서 비슷한 시도를 했다. 색을 소유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그럴 수 없다. 하지만 팬톤은 그것을 규정하는 기준과 제안력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2002년부터 매년 12월 발표되는 ‘올해의 컬러(color of the year)’는 다양한 산업군 전반에 걸쳐 새로운 컬러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컬러를 경험재로 확산시키는 노력도 계속한다. 팬톤 컬러 칩, 팬톤 컬러 인스티튜트, 팬톤 호텔, 팬톤 머그, 팬톤 아이폰 키보드, 팬톤 립스틱과 영화 제작까지 색깔을 주도하는 기업의 특별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색을 맛보라’는 구호로 휴양지 모나코에 등장한 건 팬톤(Pantone) 카페다. 이 카페의 음료에는 이름에 팬톤의 색 분류번호가 표시된다. 시각이 미각으로 전환되는 다색다감한 즐거움은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인기를 이어 파리에서도 패션위크 기간에 맞춰 팝업 카페를 선보였다. 기본적으로 감각에 의해 경험되어 정서적 만족에 이르게 하는 색채 전문 기업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공간에 녹여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몰스킨은 철저하게 아날로그 감성으로 고유의 색채를 지녔기 때문에, 팬톤은 시각적 경험을 정서적 가치로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나 감성으로 존재 의미를 찾는 카페와 융합될 때 이질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브랜드 경험 확장을 고려하는 기업에게는 어떤 감성과 정서가 우리 브랜드의 핵심인지를 고민하게 하고, 새로운 공간 사업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어떤 콜라보나 제안을 통해 공간 고유의 감성을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