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포터에서는 해리포터가 마법학교에 가기 위해 준비물을 구매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해리포터 팬들이 가장 흥미로워 했던 장면은 단연 지팡이 가게에서 마법 지팡이를 고르는 장면이었다. 지팡이만 파는 곳이지만 이 가게에서는 나무의 종류나 모양,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지팡이가 수천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천장까지 높이 쌓아 놓은 많은 지팡이들 중 해리포터는 몇 개의 테스트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지팡이를 구매한다. 내가 본 일본 도쿄는 마치 이 지팡이 가게 같았다. 스타킹, 양말, 노트, 심지어 쌀까지 도쿄는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수십 가지로 세분화 되어있었다.
11가지 편안함을 신다, 아스티구
한국에서 스타킹 구매할 때 고려사항은 색상, 데니아(실의 굵기, 데니아 숫자가 작을수록 비침이 있고, 클수록 두껍고 비침이 덜함) 정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스타킹의 선택지가 무려 11가지나 있다. 일본의 대표 스타킹 브랜드 ‘Astigu(이하 아스티구)’는 1947년 설립된 아츠기(ATSUGI) 기업의 브랜드이다. 아츠기는 스타킹, 양말 등의 레그웨어 제품, 속옷, 보정웨어 등을 망라하는 약 47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으로 창업자 ‘호리 로쿠스케’는 여성의 복장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에 ‘여성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는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감하여 “모든 여성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츠기를 만들었다. 아스티구는 아츠기의 대표 브랜드이자 일본 스타킹 대표 브랜드인 만큼 ‘최초’타이틀을 단 기술,상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여성의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라인을 위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개발중인 기업이다. 일본 최대 레그웨어 브랜드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아스티구’는 어떻게 스타킹을 11가지로 분류 할까? 사실 별 거 없어 보이는 스타킹에도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있다. 시간과 돈을 들여 한 패디큐어는 스타킹을 신으면 가려지고, 앞이 오픈 된 구두를 신을 때도 스타킹 때문에 어색해 보인다. 멀쩡하던 치마도 스타킹을 신으면 걸을 때 마찰 때문에 모양이 틀어져서 원하는 핏이 나오지 않고, 여름에는 땀이 차 찝찝했다. 이런 소비자의 세세한 니즈까지 캐치한 아스티구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스타킹을 분류하였다.
1. 肌 : 깨끗한 피부를 연출해주는 스타킹
2. 魅 : 밴드부분이 보이지 않는 스타킹
3. 輝 : 고급진 광택의 스타킹
4. 透 : 투명하고 섬세한 스타킹
5. 黑 : 검정 스타킹
6. 圧 : 압박 스타킹
7. 強: 많이 걷는 사람들을 위한 튼튼한 스타킹
8. 指 : 발가락 스타킹
9. 開 : 패디큐어가 보이도록 앞부분이 트인 스타킹
10. 止 : 발바닥이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여 걷는 모습을 아름답게 만드는 스타킹
11. 爽 : 상쾌한 소재로 시원한 여름스타킹
11가지 장점을 가진 스타킹을 각각 다른 색으로 분류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낸 아스티구는 올해 도쿄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팝업스토어에서는 색상 별로 디스플레이를 하여 각각 스타킹의 강점을 소비자에게 쉽게 전달하였다.
발에 대한 모든 고민, 타비오
스타킹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양말 브랜드 Tabio는 양말에서도 세심한 분류를 하였다. 1968년 지금의 회장인 ‘나오마사 오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동기와 함께 타비오를 만들었다. 타비오는 단지 양말 디자인으로만 상품을 분류 하지 않고 ‘붓기가 걱정되는 사람, 다리의 피로가 걱정되는 사람, 발 냄새가 걱정되는 사람, 오한이 걱정되는 사람, 구두 쓸림이 걱정되는 사람, 무지외반증이 걱정되는 사람, 무좀이 걱정되는 사람 ’등 으로 타겟을 나누어 양말을 판매하고 있다. 각각 제품에 따라 형태,제조방법,원료 등이 다른데 발 냄새가 걱정되는 사람에게는 데오드란트로 실을 짠 양말로 발 냄새를 억제해주고, 발에 땀이 많이 차는 사람에게는 빠르게 건조되는 데오셀 소재를 사용한 양말을 추천하는 등 고객의 니즈를 세심하게 반영했다.
쌀에도 취향이 있다, 아코메야
간편식의 증가로 쌀의 소비량이 급감하는 이 시대에 오직 ‘쌀’에 집중한 다이닝 라이프스타일 샵이 있다. 패션기업으로 알려진 사자비리그에서 2013년 도쿄 긴자에 오픈한 ‘아코메야(akomeya)’다. 아코메야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으로 쌀의 종류를 세분화하여 판매한다.
1인가구가 대부분인 이 시대에 맞춰 대량 판매가 아닌 ‘신선할 때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을 포장 판매하여 고객이 쉽게 들고 갈 수 있도록 하고 혼자 다 못 먹어 버리게 되는 상황을 줄여 낭비를 막았다. 아코메야에서 파는 쌀들은 재배 지역과 재배 방식에 따라 맛이 다른 20여 종류이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밥, 주먹밥, 솥 밥 등 쌀로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에 따라 알맞은 쌀을 추천해준다. 더 나아가 쌀밥과 함께 먹을 반찬, 쌀로 만드는 사케, 조리기구, 주방용품 등을 판매한다.
취향의 시대, 고감도를 장착하라
이처럼 도쿄 내에 상점들은 물건을 ‘그냥’ 파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난 것일까? 위에서 다뤘던 스타킹,양말,쌀의 공통점은 모두 ‘생활 필수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것들이 단지 ‘소모품’으로만 취급되었다면 현재에는 ‘취향’이 관여된다. 생산기술, 제조기술이 발달하면서 현재에는 제품이 필요를 넘어 과도하게 넘치고,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어 상품간의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그래서 단지 상품의 ‘필요’만 말해서는 팔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의 취향 반영은 매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고객들 또한 예전처럼 다수의 취향에 휩쓸려 다니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취향을 확고히 한다. 어떤 이들은 ‘양말을?스타킹을? 뭘 따지고 사? 그건 사치야’ 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양말 스타킹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더욱 신경 쓰는 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늘의 사치가 내일의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사회에서 기업이 가져야 할 덕목은 고객 니즈에 대한 민감도,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 고감도의 제품/서비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