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특별한 삶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디자인 호텔로 잘 알려진 네스트호텔(Nest Hotel)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1000여권의 아트북이 비치된 쿤스트라운지(Kunst Lounge)에 들어선 이후였다. 그들이 제공한 라이브러리는 이 호텔이 단순히 자고 쉬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이들의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으로의 존재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퀸마마마켓(Queen Mama Market)이 의류판매 공간을 비우고 그 공간에 서점 ‘파크(Parrk)’를 도입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퀸마마마켓은 사람들이 도심공원을 낀 멋진 공간에 소장가치 높은 책들로 자기만의 서가를 구성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이 서점의 큐레이션은 감각적인 어른들을 모여들게 하기 충분했다. 이들 외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다양한 서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텍스트의 시대는 갔다고 개탄하며 어두워져만 가는 종이책의 미래와 함께 소멸할 것만 같았던 ‘서점’, ‘책방’이 살아나고 있다. 비단 그냥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서점은 힙한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해주고 의미있는 맥락을 공유시키는 공간으로 변화를 이끄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왜 이 때, 지금, 책 그리고 서점이 이토록 이슈인가?


관점이 투영된 ‘연결’의 공간

1세대 카피라이터로, 삼성의 첫 여성임원으로 이름을 떨쳤던 최인아 대표가 오픈한 ‘최인아 서점’에서는 ‘책’을 매개로 생각하는 삶을 제안하고 콘서트도 열리고 광고계 스타 크리에이터들의 강의도 활발히 이뤄진다. 평대에 놓인 책들의 분류는 더욱 쉽고 친절하게 눈길을 끈다. ‘요즘, 재미가 부족한 그대에게’, ‘당신의 괜찮은 삶을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심지어 개별 책들에 꽂힌 넓은 책갈피에는 ‘디자이너 ooo가 추천하는 책’, ‘카피라이터 ooo가 권하는 책’ 등의 인덱스가 첨부되어 영감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쉽고 직접적인 지침을 건네준다. 광고회사 임원으로 살았던 서점 주인은 직접 손님을 맞고 명함을 나누고 책을 권한다. 그는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그의 관점을 온전히 투영시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책(Book)’이라는 것이 원래 저자의 관점이 온전히 투영된 매체인 점은 ‘서점’이라는 공간을 새로운 연결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미 충분조건이다. ‘어떤 사람의 관점이 반영된 책들인가’라는 기준은 앞으로 생길 수많은 특별한 서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관점의 투영’이라는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단연 일본의 ‘일주일에 한 권만 파는 서점’이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이렇게 불리워지는 이 곳은 헌책방에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 근거한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고 말하며 일주일에 단 한권의 책을 이와 관련된 예술작품이나 사진작품과 함께 전시하며 판매한다. 지금도 ​”하나의 서점, 한 권의 책(A Single Room, A Single Book, 一冊一室)”의 관점을 보기 위해 긴자거리에서 15분 떨어진 골목으로 많은 이들이 연결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작은 동네서점 헤이우드힐(Heywood Hill)의 성공은 서점의 역할을 책판매가 아닌 철저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로 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헤이우드힐’ 서점에는 세 가지의 맞춤형 서비스가 있다. 회원가입을 하면 10권 정도 꼭 읽어볼만한 책을 보내주고, 희귀한 책을 찾아달라고 하면 찾아주고, 개인 서재를 컨설팅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판매(Sales), 큐레이션(Curation)을 넘어선 비스포크(Bespoke:맞춤)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역할을 스스로 부여한 것이다. 헤이우드힐 주인은 좋은 비스포크 서비스를 위해 자기 서점에 들어온 모든 책을 다 읽는다고 한다. 동네 오프라인 서점의 차별화된 경쟁우위 요소를 고객과의 친밀성을 강조하는 이 서점은 단골 고객의 취향과 원하는 주제를 가장 잘 아는 지적 파트너로서 효과적인 추천과 맞춤의 제안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점의 역할을 ‘항상 재밌는 것을 연결해주는 곳’으로 규정한 곳이 일본의 B&B(Book & Beer)이다. 한국에도 맥주를 마시는 서점이 있지만 그 전신과도 같은 곳이 바로 이 곳이다. B&B는 유명 북코디네이터 우치누마 산타로와 광고대행사 대표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서점이다. 정숙해야 할 서점에 맥주를 판매하는 것으로 기존 관념을 뒤엎고 서점의 역할을 변화시켰다. 이들의 수익모델 역시 세 가지이다. 책, 이벤트, 맥주 이 세가지를 연결한 하나의 공간에서 펼치면서 그 서점에 가면 항상 재미있는 것이 있다’라는 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이곳의 흥미로운 점은 서점 인테리어 소품인 책장, 테이블, 의자, 조명, 스피커 등 전시된 모든 것을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것이다. 주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설치되어있는 그 가구를 파는 것이라 이 서점의 인테리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된다.

세상의 많은 즐거움 중에서 서점에 와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선택했구나
– ‘중쇄를 찍자’ 중

서점은 줄어도 책방은 늘어난다

동네서점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언론에서도 작은 독립서점들을 다룬 기사들이 빈번하다. 온라인 서점에 하나 둘 사라져갔던 오프라인 서점이 아니었던가. 지금의 출판업계는 최악의 기록을 갱신하는 위태로운 상황이 여전하고 몇 년 전보다 나아진 것 하나 없는데 전국의 골목 후미진 곳에서 하나 둘 개성있는 책방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여행책만 팔기도 하고 인문학 책을 집중적으로 모아둔 책방도 있고 사진책만 취급하는 곳, 혹은 정말 하루에 몇 권이나 팔까 궁금한 소설 전문 책방도 생겼다. 작게는 3~5평부터 30~40평 까지 아담한 독립공간은 말 그대로 ‘책방’이다. 이들이 파는 것은 단순히 책이 아니다. 책을 정말 좋아하거나 책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진 개인들이 각각 자신만의 책의 관점을 기반으로 자기 나름의 ‘책방’을 시작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요컨대 ‘책’이라는 물리적 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소프트한 컨텐츠가 기반인 책방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 부산 인디고 서원은 청년들을 위한 책방이다. 학원가로 유명한 부산 남천동에서 입시 참고서는 단 한 권도 취급하지 않으면서 청소년들의 인문학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아 세계 인문학 석학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20~30대 출판, 디자인, 기획자들의 취향을 저격한 디자이너 책방 주인의 추천이 있는 땡스북스, 맥주를 마시며 책을 고르고 북바이북에서는 평일엔 매일 저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른바 책을 파는 ‘서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감소하겠지만 ‘사람’으로 책을 매개하고 있는 ‘책방’의 움직임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책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뉴노멀 시대의 대담한 제안력

3대째 이어온 60년 된 속초의 동네서점 동아서점은 폐업직전에 책을 좋아하던 막내아들이 서점을 물려받으면서 급격한 변화의 길로 접어든다. 서점에 불어온 최악의 불황시대에 오히려 기존 책을 모두 반납한 뒤 새로운 책으로 교체한 점, 다들 규모를 줄이거나 폐업을 하는 시기에 오히려 서점의 규모를 3배로 늘리고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련의 작업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다. 변화된 시대에 변화된 시각으로, 새로운 컨텐츠와 새로운 공간을 연결하겠다는 강력한 의도를 심은 것이다. 동아서점의 제안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올리버 색스가 사망했을 때 이 서점에는 올리버 색스 코너가 생겼고 “의학계의 시인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손글씨와 함께 작은 화분, 생전의 저서들을 모아두고 책에서 발취한 문장이 붙어있었다. 우연한 방문자를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은 손글씨로 써붙인 이런 문장을 발견하는 때이다. 동아서점의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동네서점의 생존 스토리를 넘어서 시시각각 불안과 변화의 시대를 사는 개인들, 브랜드들에게 건네주는 메시지가 크다.

지금과는 다른 틀(Frame)이 기준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는 기존의 방식으로 낙관적인 기대를 할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소비자들에게 서점은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며 여가와 사교의 장소이다. 서점의 고객을 단순히 구매자가 아닌 ‘책의 낭만을 즐기는 친구나 연인’으로 인식한 새로운 서점들은 그 존재감을 더욱 발하게 될 것이다. 변화된 시대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서점의 변화는 독자들을 적극적 참여자로 변화시키면서 그 연결성을 높여가고 있다. 물질적 소유보다 독특한 경험, 정신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변화를 이끄는 뉴노멀시대에 서점의 변모는 당연하기도 하며 단연 의미심장한 변화다. <책의 역습>의 저자 우치누마 신타로의 전망을 주문처럼 되뇌이며 기대를 품어본다. “책은 앞으로가 더 재미있다. 책을 품고있는 서점도 앞으로가 더 재미있다”